[최중증 발달장애인 맞춤 돌봄 제도 1년]
최중증은 지원사들 기피, '가족 독박' 돌봄
정부, 최대 24시간 1대1 맞춤형 돌봄 제공
가족 우울, 불안, 스트레스 크게 줄어들고
"엄마 때리고 장판 찢던 아이가 변했다"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긍정 효과 나타나
아직 2340명만 이용···국고 지원 확대해야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이윤호씨와 그의 어머니 김남연씨의 다정한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계없음. 김씨 제공
"제 평생에 지금이 화양연화(가장 아름다운 시절)예요. 이제 마음 놓고 애를 보낼 수 있으니까, 그 시간만큼은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여기 보낸 뒤로는 '좀 더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해나 남을 때리는 등 도전행동이 심각한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느라 우울증을 앓았던 A씨는 드디어 생긴 '내 시간'에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도전행동이 강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지원사들이 기피하고, 소수 인력이 다수를 챙기는 시설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어렵다. 돌봄은 오롯이 A씨 가족의 몫이 돼 가슴을 짓눌렀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발달장애 권리 예산 확보,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보장 등을 촉구하며 오체투지 집회를 열고 있다. 강예진 기자
그런 A씨의 숨통은 지난해 6월부터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1대 1' 돌봄을 제공하는 정부 서비스(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가 실시되면서 트였다. "노래 교실도 다니고, 일도 하고, 원예도 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니까 다닐 곳도 많아지고 아주 바빠요. 내 시간이 생겼어요"라는, 아주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1년간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를 이용한 건 A씨 자녀를 포함해 모두 2,340명이다. A씨처럼 서비스를 받은 발달장애인 보호자들의 우울감은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의 집 안과 차량의 모습. 곳곳이 떨어져 나가 청테이프로 보수했다. 김미옥 전북대 교수 발표문 갈무리

보호자 우울감 절반 가까이 줄어...도전행동도 감소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김미옥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연구진이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 이용 전후 변화를 조사한 결과, 보호자의 우울감은 5.22점(9점 척도)에서 2.86점으로 줄었다. 불안, 스트레스 총점 모두 비슷하게 감소했으며, '자살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상해로 병원을 가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감소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는 장애 정도에 따라 24시간 1대 1 지원부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제공되는 주간 개별 1대 1 지원, 다른 그룹형 발달장애인 돌봄서비스에 참여하되 전담인력이 추가로 배치돼 지원하는 주간 그룹 1대 1 지원으로 나뉜다. 시도 단위로 의료인, 사회복지사, 장애인복지 전문가 등의 자격을 갖춘 외부 위원이 참여하는 서비스심의위원회를 두고,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방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신청자에 맞는 지원 유형을 정한다. 신청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탈락할 수도 있다. 이용자의 부담금은 없다.

이 제도를 통한 긍정적 변화는 발달장애인 본인에게도 나타났다. 도전행동의 빈도와 심각도가 모두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자가 평가한 도전행동의 빈도는 서비스 이전 3.57점(6점 척도 기준)에서 서비스 이후 3.04점으로 줄었다. 도전행동의 심각도는 2.99점에서 2.45점으로 줄었다. 서비스 제공 기관과 가정 모두 발달장애인이 돌봄 서비스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표정이 밝아지는 등 더 행복해졌다고 인식하는 편으로 나타났다.

극적인 변화가 나타난 사례로 소개된 B씨는 특수학교를 2, 3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지역 내 복지시설도 다니지 못할 정도의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가정에선 B씨가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돌봄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화가 나거나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끓는 국을 몸에 붓거나, 난간 위에서 아파트 아래를 바라보거나 가스 배관, 장판, 벽지, 조명 등을 떼버리기도 했다. 멀리 외출하는 건 꿈꾸기도 어려웠고, 집 근처 작은 공원에 외출해도 흥분하면 옷을 벗고 몸에 대변을 바르는 등의 행동을 했다. 그런 B씨도 전문 인력의 돌봄을 1대 1로 받게 되면서, 이제는 다른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맞춤형 통합돌봄 서비스 개요. 복지부 제공

발달장애인 가족 고립 줄고 사회 진출 넓혀

발달장애인과 부모 모두 가정에 고립되지 않고 지역 사회로 나와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점도 긍정적 영향이다. 연구에 참여한 C씨는 "애 아빠가 20㎏ 빠졌는데, 마음이 편하니까 다시 살이 올라서 이제야 볼 만하다. 여기서 내 가족을 살렸다"며 "남편도 이제 노인 일자리를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 일하니까 너무 좋다고 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는 "지원 필요도에 근거해 맞춤형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안정적 국고 지원, 지원 대상자 및 미선정자에 대한 개인별 지원계획으로의 연계 체제 구축, 종사자 처우 개선 및 인력관리체계 구축 등을 추후 과제로 꼽았다.

복지부는 1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1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세미나에서는 김 교수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서비스 이용자의 사례 발표가 예정돼 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