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순경(왼쪽)과 허준녕 순경(오른쪽)

올림픽·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순경 계급장 달고 '제2의 삶'

"아직 범인 잡는 데 발차기를 써 본 적은 없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준비는 돼 있어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에서 '금빛 발차기'를 날리며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킨 임수정(31·여)은 8년이 지난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바로 경찰관이다. 그녀는 지난해 12년 만에 진행한 경찰관 무도 특별채용에서 당당히 합격해 순경 계급장을 달았다.

지난달 경북 경산경찰서 기동순찰대로 발령받았다. 기동순찰대는 강력범죄나 집단범죄가 생기면 투입되는 조직이다.

임 순경은 4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기른 체력과 정신력이 경찰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선수 시절 상대에게 날린 발차기를 경찰이 되고서 아직 써본 적 없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발차기할 준비가 돼 있다"며 웃었다.

이어 "여경은 홍보나 사무 업무를 주로 맡는다는 편견을 깨고 일선에서 누구보다 신속하게 범인을 잡고 싶다"며 "지금은 금메달리스트여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수사 베테랑이 돼 경찰관으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가대표 태극전사들이 저마다 메달 사냥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임 순경처럼 이제 경기장을 떠나 '시민 안전 지킴이'로서 또 다른 활약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무도 특별채용에서 경찰관으로 변신해 '제2의 삶'을 사는 이들은 임 순경을 포함해 20명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메달을 목에 건 선수 출신이다.

공자영 순경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태권도 78㎏급 금메달리스트인 허준녕(29) 순경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서울 광진경찰서 광나루 지구대에서 동네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

허 순경은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며 "범죄 없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운동선수로 15년을 살다가 야근 등 불규칙한 경찰 업무를 맡으면서 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킨다는 보람은 운동할 때 느낀 성취감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63㎏급에서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같은 체급 동메달을 수확한 공자영(31·여) 순경은 서울 강서경찰서 곰달래 지구대에서 근무한다.

최근 강서서는 공 순경의 사진을 실물 크기로 만든 '등신대'를 강서구 화곡동 어둑한 골목 일대에 설치했다. 유도 메달리스트가 이곳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보여줘 범죄 억제 효과를 노린 것이다.

공 순경은 "연예인도 아닌데 등신대가 만들어져 약간 부끄럽기도 하다"면서도 "시민들이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선수는 은퇴 이후 할 수 있는 일이 지도자나 체육 교사 이외에는 거의 없다"며 "멋진 경찰로 본보기가 돼 후배들의 진로의 폭을 넓혀주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