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숙희(오른쪽) 곡선초교 교장이 ‘넌 소중한 아이야’라는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고 등굣길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곡선초교 제공

허숙희 수원 곡선초교 교장

“지난 겨울 학교 아이들과 김장을 해서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나눠드리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8일 경기 수원시 곡선초교 허숙희(62) 교장은 지난 1975년 교직에 입문해 학생들과 봉사·장학활동 등을 함께하며 후배 교사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허 교장은 2006∼2009년 경기도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하며 다문화·다자녀 가정의 자녀들을 방과 후에도 돌봐주는 ‘돌봄 교실’을 정착시켰다. 2013년에는 경기도교육청 장학관으로 중증 장애 학생들의 학교 내 일자리 사업을 추진했고, 교육청 내에 장애 학생들이 운영하는 커피숍도 만들었다.

그는 “직접 만든 커피를 선보이며 자신감을 보이는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숍 오픈을 추진했다”며 “아이들의 역량을 직접 눈으로 본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허 교장은 중풍으로 1급 장애인이 된 시어머니를 1999년부터 지난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모시면서 장애 학생들을 위한 지원 사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는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었기에 장애 학생들을 위한 사업에 더욱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며 “아픈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시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워킹맘으로서 겪은 시련은 돌봄 교실을 정착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허 교장은 “1970년대 후반 아이들을 연달아 낳아 키우면서 주위에 도움을 받지 못해 급할 때는 동창들을 찾아다니며 아이를 맡겼다”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돌봄 교실 사업에 애정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허 교장은 교사 초년 시절부터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허 교장은 1977년 분당초교에 재직하면서 100만 원을 가난해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쾌척할 만큼 학생들을 위해서는 아낌이 없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길을 찾다가 동료 교사들과 의논해 당시 받은 보너스를 몽땅 장학금으로 내놨다”며 “그때 그 일을 시작으로 분당초교에 ‘정우장학금’이라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장학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허 교장은 오는 8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정년 후 그는 학교를 떠나지만, 학교 밖에서도 어려운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로 남고 싶다고 했다.

허 교장은 “퇴직 후에 다문화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한국 언어·문화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 교장은 한국말과 글이 서투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일반 학생들과의 학력 격차로 고생하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후 퇴직 후 진로를 결정했다.

40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쌓인 피로로 인해 간 수치가 높아질 만큼 지쳐 있지만, 퇴직 후에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퇴직 후 휴식시간을 가지라고 권유하던 가족들도 허 교장의 열정을 알기에 퇴직 후 봉사활동 계획을 말리지 못했다.

그는 “나는 아이들과 떨어져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심성이 착한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에 언제까지나 매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