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 것 안 해볼 것 다 해봤고…이제 어려운 분들 돕고 싶어”
소유 건물 임대료 낮춰주고, 재난지원금도 쌀로 바꿔 기부

정수복씨(왼쪽)가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에게 기부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60년 중구 토박이인 정씨는 지역 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관심을 갖고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중구 제공

서울 중구에는 ‘키다리 아저씨’가 살고 있다. 그는 지역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중구청과 동주민센터를 찾는다. 60년 넘게 중구 ‘토박이’로 살아온 정수복씨(81) 이야기다.

지난 20일 중구 신당5동 주민센터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기부받은 1000장의 면 마스크를 관내 어르신 등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분류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면 마스크 1000장을 주민센터에 놓고 간 이가 정씨였다. 그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여름용 면 마스크를 기부했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노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자,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자비를 털어 여름용 마스크를 마련해 내놓은 것이다.

정씨는 신당5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 주민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24일 중구 관계자는 “키는 작은 편이지만 마음 씀씀이는 누구보다 크신 분”이라고 전했다.

정씨의 선행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발굴해 지역 내 복지문제 해결에 나서는가 하면, 매년 성금 모금사업에 참여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흔한 ‘기념사진’ 한 장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중구 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관심을 갖고 돕는 이유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갖가지 일을 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 경험 때문이다. 그는 “평생 해볼 것, 안 해볼 것 다 하며 살아왔다”며 “이제는 주변의 어려운 주민들을 돌아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정부로부터 받은 6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도 전부 쌀로 바꿔 주민센터에 기부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신당5동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구에 작은 건물 2채를 갖고 있는 정씨는 지난달부터 건물에 입점한 11개 점포의 월 임대료를 20만원씩 낮춰준 ‘착한 임대인’이기도 하다. 중구 관계자는 “원래도 월 임대료가 높은 곳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오는 8월까지 다섯 달 동안 임대료를 인하하겠다고 임차인들에게 통보했다. 정씨는 “8월이 지나서도 힘들어하면 임대료 인하 기간을 더 연장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듯, 그 역시 자신의 선행이 주변에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다. 정씨는 “내가 해온 일이 갑자기 알려지면서 자꾸 주변에서 찾아오고 있어 다른 지역으로 잠시 가 있으려 한다”며 “지금까지 한 일들은 너무 작고 사소한 일이라 어디 자랑할 것도 되지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어려운 일로 도움이 필요하면 평소에도 마다않고 앞장서주신 분이면서 공치사도 하지 않는 어르신”이라며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도 착한 임대, 면 마스크 기부로 어려운 이웃에게 힘을 주는 정수복씨가 중구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