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1949∼2020)

오늘이 아빠를 보낸 지 꼭 한 달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 겪어야 할 일이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에 꾹꾹 눌러놨던 슬픔과 아픔이 툭하면 비집고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딸을 보고 아빠가 가슴 아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아빠 몸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은 일 년 전쯤입니다. 강남 모 병원에서는 아빠가 ‘암’이라며 수술 날짜를 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컴퓨터단층촬영(CT)을 다시 찍고 싶다고 우겼는데 병원에서 오진이라며 수술 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끝내 아빠의 병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엄마와 하루에 2번씩 한강으로 운동을 다니며 계획도 많이 세우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지내오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최근 아빠는 혈색과 건강이 많이 좋아지자 차에 자전거를 싣고 전국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날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네 부부와 짧은 여행을 가기로 했던 날입니다. 예보에는 비가 몹시 온다고 했는데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 이런 날씨에 부르는 노래인가보다 하던 날이었습니다. 아빠도 그랬겠지요. 그날따라 아빠도 아침 일찍부터 외출채비를 하고, 친구들과 나들이를 떠난 겁니다. 아빠는 죽마고우들과 함께 아빠가 좋아하는 조개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날 아빠도 행복했나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진 속 아빠의 얼굴이 빛나더군요.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습니다. 아빠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길가에서, 친구들이 옆에 있는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친구 이름을 부르고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40분이나 심장이 멈췄는데도 이를 이겨내고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아빠는 쓰러지신 지 3일째 되는 날 다시 심정지가 왔고 결국 6월 16일 오후 70여 년의 세상살이를 뒤로하고 가족 곁을 영영 떠났습니다.

아빠가 깨어나길 기도하며 중환자실 앞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보호자인 가족도 면회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빠를 끝끝내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습니다. 면회가 허락됐을 땐 제가 들어가자마자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더군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사람 몸이 얼마나 빨리 식는지. 따뜻했던 아빠 손발이 5분도 채 안 돼 차가워지는 겁니다. 저는 아빠를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차 안에서 1시간 동안 아빠와 단둘이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나 차가워진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안아주는데 안타까움이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좀 더 시간을 보낼걸, 아빠 손 자주 잡을걸…. 최근 심심하다고 했던 아빤데 바쁘다는 핑계로, 세종에 산다는 핑계로 자주 못 찾았던 겁니다.

이제 아빠를 진짜 보내야 할까요. 저는 세 명의 아빠가 다시 생겼습니다. 아빠와 함께 마지막을 보냈던 영준·동영·기태 아저씨입니다. 아빠를 보내고 아저씨들과 저녁을 먹는데 아빠의 웃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빠는 사랑하는 딸들과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있겠지요. 이제 아빠라는 연결고리로 지난 삶, 함께했던 시간, 한 조각의 추억을 가진 아빠 지인들, 엄마, 동생 무늬와 함께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더 둘러보고 타인의 아픔을 더 위로해주는 사람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전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에 끝내 말하지 못해서 아픈 말, 아빠 정말… 사랑합니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