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2 안양 수비수 닐손 주니어, 4개월째 사비 들여 서울역 봉사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9일 오후 5시 30분쯤, 서울 중구의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 앞에 노숙인들이 몰려들었다. 길게 늘어선 줄의 맨 앞에선 한 브라질인이 노숙인들에게 비닐 봉투를 나눠줬다. 국내 프로축구 2부 리그 팀인 안양에서 수비수로 뛰는 닐손 주니어(31)였다. 봉투 안엔 코로나 방역용 마스크와 라면, 반찬, 생수 등이 담겨 있었다. 닐손 주니어가 사비를 들여 구입한 것이었다. 그는 이날 자원봉사자 10여명과 봉투 200개를 노숙인들에게 전달했다. 20분 만에 준비해 온 물품이 동났다.

닐손 주니어는 지난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역 주변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에게 각종 생필품을 제공하고 있다. "마스크가 생명인 시대에 그것을 살 돈조차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며 봉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닐손 주니어가 9일 오후 구 서울역사 앞에서 노숙인들에게 마스크와 라면, 생수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나눠주는 모습. 그는 지난 5월부터 매달 노숙인들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닐손 주니어는 지난 2014년 부산에 입단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2016년 초 고국의 사우게이루 팀으로 갔다가 반년 만에 부산으로 복귀했다. 2017년에는 부천으로 이적해 3시즌을 보냈고, 올해 1월 안양 유니폼을 입었다. 국내 무대에선 7시즌에 걸쳐 총 173경기에 출전해 18득점 6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지난 2009년 브라질 세리 A(1부 리그) 나우치쿠 카피바리비에서 프로 데뷔한 이후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계속 기부를 해왔다. 지금도 고국 브라질의 가정 60곳에 식량을 보내주는 등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각종 봉사와 기부에 지출하는 돈이 매달 350만~400만원 정도다. 닐손 주니어의 연봉은 약 3억원으로 알려졌다.

닐손 주니어는 "나 역시 무척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배불리 먹을 수 없는 데다 생필품조차 갖추지 못하고 사는 설움과 고통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며 "고향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길에서 힘들게 지내는 분들을 여럿 봤다. 내가 조금만 도움을 드려도 그들의 어려움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7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최근까진 어떻게 봉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닐손 주니어는 "언어 소통이 어렵고 물정 파악도 잘 안 됐다.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만 먹고 있었을 뿐 행동으로 옮길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야 한국에 거주하는 브라질 출신 브루노 브란코 소아리스(26) 목사의 도움을 받아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닐손 주니어는 "브라질에선 축구선수라면 이 정도 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고향에선 매년 말쯤이면 선수들이 동네 축구장에서 자선경기를 했다. 입장료 대신 받은 음식은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기에 나 역시 선수가 되고서 자연스럽게 기부활동에 동참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K리그에서 뛰는 다른 브라질 출신 선수들도 대부분 봉사하고 있는데 나 하나만 추켜세워지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도 했다.

닐손 주니어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봉사활동을 계속할 작정이다. 그는 "마스크가 필요 없게 되면 비누나 샴푸 등으로 물품을 바꿔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계속 주겠다"면서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언젠가 세계인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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