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철 포스텍 교수·제넥신 대표, 학교에 100억원 상당 주식 기부

"바이오·헬스 산업은 전자나 자동차보다 규모가 큰 산업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글로벌 바이오 기업이 없어요. IT(정보기술) 분야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국내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 성영철(64) 교수는 20일 학교에 100억원 상당의 개인 소유 주식(제넥신)을 기부한 뒤 가진 본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포스텍은 성 교수의 기부금으로 'SL기금'을 조성했다. SL기금은 '생명을 구한다'는 뜻의 영어 'Saving Life'의 약어다. 포스텍은 기금을 활용해 생명과학·헬스케어 융합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우수 인재 유치, 새로운 바이오 분야 벤처기업 육성에 활용할 계획이다.

학교에 10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한 성영철 포스텍 교수는 “국내에서도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이오 인재와 기업 육성을 위해 기부한 금액은 900억원이 넘는다. /포스텍

성영철 교수는 연세대 생화학과를 나와 미네소타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포스텍에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바이오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회사 제넥신의 대표이기도 하다. 1999년 학내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현재 시가총액 3조원에 육박하는 회사로 키워냈다. 현재 제넥신은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도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10여개의 바이오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 중이다.

그의 기부는 200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제넥신의 지식재산권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대학에 출연하기로 했다. 성 교수는 "지금까지 받았던 도움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학교와 여러 기관에 기부 금액을 늘려 갔다. 2018년에는 대학이 보유한 고부가가치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포스텍 1호 펀드'에 100억원을 기부했다.

이 밖에도 가톨릭대 의대에 100억원, 국제백신연구소에 100억원, 연세대 '에스엘바이젠산학협력관' 건물 건립에 260억원 등 700억원을 기부했다. 지금까지 그가 기부한 금액을 다 합치면 총 900억원이 넘는다. 모두 개인 소유 주식이다. 초기 그의 제넥신 지분율은 90%였지만, 이후 증자가 이뤄지고 기부도 하면서 현재 지분율은 6% 정도다.

성 교수는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가 전혀 조성돼 있지 않았던 1990년대에 기업을 만들었다. 그는 "대학에서 기초연구밖에 하지 못하고 논문으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직접 신약을 끝까지 만들고 싶어 회사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성 교수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개발 중이던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실패해, 2005년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2009년 증시에 상장하는 등 재기에 성공했지만, 2012년에는 회사가 관리 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주위에서 많은 사람이 도와줬다"고 했다. 여러 번의 실패와 다시 재기한 경험으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바이오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며 "이제는 도약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전공학 붐이 일어난 1980~1990년대에 공부했던 우수한 학생들이 사회에 배출됐고, 기초의학 연구를 하는 의사들도 많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기부를 할 겁니다. 우수한 인재들과 기업들이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치료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산업을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키워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은 일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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