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합창단 재학생·졸업생들 '가상 합창' 프로젝트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피아노 연주자의 반주로 시작한 합창 영상에는 단장하고 무대에 오른 합창단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의 얼굴이 하나둘 화면에 떠올랐다. 지난 6월 서울대학교 합창단이 공개한 '가상 합창(Virtual Choir)' 영상이다. 단원들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성부를 나눠 맡고 각자 녹음한 노래 파일들을 컴퓨터로 합쳐 합창 영상으로 만들었다. 재학생과 졸업생 65명이 부른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 영상은 유튜브에 올린 지 두 달이 지난 현재 1만6000회가 넘게 조회됐다.

합창단 활동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활동에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을 뿐 아니라, 입을 벌리고 노래하는 합창을 연습하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교회에서 퍼진 코로나의 원인으로 성가대 연습이 지목되기도 했다. 박준하(19) 서울대 합창단장은 "합창 연습을 하면 비말이 튈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써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일주일에 두 번씩 하던 연습을 2월부터 중단했다"고 했다.

서울대 합창단 재학생·졸업생 단원들이 각자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르는 장면. 이를 모아 합창으로 완성한 영상은 지난 6월 유튜브에 올라와 1만6000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서울대 합창단은 만나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는 '가상 합창'에 졸업생들이 모인 서울대OB합창단과 함께 도전하기로 했다. 합창곡은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노래인 '걱정 말아요 그대'로 골랐다. 단원들은 한 달여간 악보를 보며 '자습'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단원이 휴대전화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모았다. 65명이 보낸 목소리의 세기와 길이를 조율해 듣기 좋은 합창곡으로 완성해냈다. 원종수(53) 서울대 합창단 지휘자는 "집에서 녹음하기 어려운 아이 엄마는 차에 타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입체적인 음향을 위해 노래를 다섯 번 다르게 녹음해 보낸 단원도 있다"고 했다.

단원들은 가상 합창을 준비하며 함께 만나 노래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다. 여러 성부가 한 자리에서 화음을 맞춰나가는 실제 합창과 달리 가상 합창은 영상이 완성되기까지 전체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박 단장은 "베이스 성부를 맡고 있어 주 멜로디가 아닐 때가 잦다. 혼자 녹음할 때는 내가 부르는 게 맞는 음인지도 헷갈렸다. 단원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영상을 보니 그제야 합창하는 것처럼 들려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영상에는 아기를 사이에 두고 노래를 부르는 부부부터 수술복을 입은 의사까지 다양한 모습의 단원이 등장했다. 박현욱(43) 서울대OB합창단장은 "나이가 가장 많은 단원이 79학번이고 가장 어린 단원이 19학번이었다. 많게는 마흔 살 차이가 나는 단원들이 모였다"고 했다. 박 단장은 "코로나로 인해 생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상 합창을 통해 극복한 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이번 가상 합창에는 유학과 취업 등으로 외국에 나가 있어 합창단 활동을 못 했던 동창들도 참여했다고 한다.

박 단장은 "다른 노래도 가상 합창으로 함께 불러볼 계획이 있지만 합창은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서 화음을 만드는 것이 매력"이라며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 함께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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