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회(1932∼2013)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수구레 파는 장사꾼이 동네 골목을 다니며 “수구레 사세요∼ 수구레 사세요∼”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란 양은 냄비를 들고 가셔서 수구레를 사서 부엌 찬장 한구석에 고이 놓고 아버지께서 퇴근해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부엌으로 가서 수구레 몇 점을 먹고 방 안으로 들어가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아버지는 충남 연기군(지금의 세종시)에서 내가 두 살 때 상경해 영등포에 있는 연탄공장에서 일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연탄 가루를 많이 들이마시기 때문에 기름기 있는 수구레를 사서 아버지만 드시게 하셨던 것 같다. 학교에서 뛰어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온 어느 날, 배고픔에 찬장에 숨겨둔 수구레를 티가 나게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버지 퇴근 후 어머니가 수구레를 밥상에 꺼내놓았는데 그만 들통이 났다. 하늘이 노래지며 혼났구나 생각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데 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부르며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저녁이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중학생 때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생일날 어머니가 도시락에 수구레 반찬을 싸주셨는데 친구들이 맛있다며 무슨 고기냐고 물어봐서 수구레라고 했더니 잘 몰라 설명해 줬던 적이 있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 껍질과 쇠고기 사이의 ‘지방육’이다. 쫄깃하게 씹히는 고기와 매콤한 양념이 더해지면 그 맛이 일품이다. 수구레 맛을 안 친구들이 언제 또 싸오냐고 재촉하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해드리며 웃음꽃을 피웠었다.

군 복무 시절 경기 양주의 모 부대에 자대 배치받은 후 첫 면회 때 어머니께서 만든 수구레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오신 적이 있다. 논산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각개전투 등 힘든 훈련을 마치고 행군해서 내무반으로 들어올 때는 수구레 생각이 불쑥불쑥 났다. 집에 보내는 편지에 수구레를 먹고 싶다고 썼더니 서울에서 직접 싸 오셨던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가 찬장에 숨겨놓은 ‘아버지 전용’ 수구레를 생각하며 영등포 시장을 들르곤 한다. 딸이 유치원에 다닐 때 할아버지가 사 온 수구레를 손으로 몇 점 집어 먹는 걸 보고 따라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때 그 맛을 알아버린 딸과 함께 수구레를 먹는다. 올해 아버지 기제사 날에는 수구레를 사서 이천에 있는 국립호국원 묘소에 소주와 함께 올려드리고 왔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죄송스럽고 후회가 많이 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고생하신 탓에 후유증으로 허리 병을 앓으시다가 7년 전 돌아가셨다. 막내아들인 나에게 다정스럽게 다가오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나는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했는지…. 지금도 가끔 난 어렸을 적 아버지처럼 수구레 고기에 소주 한잔하며 아버지를 그린다.

작은아들 김태완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