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김창호 대장이 히말라야에서 눈사태로 고인이 되었을 때, 인터넷 기사에 숱하게 올라온 댓글이다. 시대가 변하며 고산등반에 대한 대중의 여론, 도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비판적인 걸 넘어 냉소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비보 앞에서 가장 막막한 이는 산악인 유가족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은 당장 생계의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네티즌들의 비판도 일리 있는 말이지만, 100% 모든 국민이 논리의 틀에 맞춰 사는 건 아니다. 경제적으로 도움되는 생산적인 활동에 미친 듯 빠져드는 이들도 있지만, 비생산적인 것 이를테면 산에 깊게 빠지는 이도 있다. 도박이나 술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목숨을 잃는 것에 비하면, 건강한 몸과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행위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살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의도치 않게 산에 깊이 매료되었고, 결혼해 자식을 낳게 되었고, 적당한 높이의 덜 위험한 산을 타려 했으나 마음은 자꾸 흰 산으로 가자 하고…. 전혀 죽음은 생각하지 않았으나 변화무쌍한 대자연 앞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장 유족의 생계가 막막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는 산악인뿐이다. 싸늘한 주변 여론 속에서도 산꾼 마음은 산꾼이 아는 법. 그런 의미에서 엄홍길휴먼재단은 지난 10년간 묵묵히 산악인 유가족을 도와왔다. 유가족에게 매달 50만 원씩 지원해 왔으며, 최장 8년간 지원 받은 유가족도 있다.

유가족은 매년 심사위원들이 모여 전국 각 지방산악연맹의 추천을 받아 심사하고 있다. 엄홍길 대장은 객관적인 선정을 위해 심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2004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 중 고인이 된 산악인 A씨의 부인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4,700만 원을 지원 받았으며, 아들 형제를 히말라야에서 잃은 모친 B씨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2,700만 원을 지원 받았다.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부산 산악인 C씨의 부인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2,100만 원을 지원 받았으며, 이밖에도 고인이 된 산악인의 자녀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해왔다. 총 지원 금액은 4억 원이 넘는다.

행여 고인이 된 산악인의 명예에 누가 되거나 유가족의 자존심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의 홍보도 하지 않았다. 대장과 대원, 산악인과 산악인, 사람과 사람의 정으로 묵묵히 대가 없이 지원해 온 것. 작지만 꾸준한 지원을 통해 부친을 잃은 어린 자녀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새로운 유가족 후보로 두 가정이 이름을 올렸으나 재단 예산 부족으로 한 가정만 지원 받게 된 것. 지역 민간 구조대장으로 활동하던 D씨는 구조훈련 도중 추락해 고인이 되었다. 11세 아들이 있는 D씨가 실내암장을 운영해 생계를 유지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어려움에 처한 것.

2018년 원정대 등반대장으로 해외 고산원정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E씨에게는 세 자녀가 있다. 장녀가 16세이며 3남매에게 드는 비용이 적지 않은 것. 심사위원들은 두 가족 모두에게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결론 내렸으나, 예산 부족으로 한 가정에게만 지원하게 되었다.

엄홍길휴먼재단의 선행은 숱한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특히 홍홀 선글라스를 수입하는 훠리스트 윤종성 대표는 6년 동안 매년 1,000만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휴먼재단의 선한 파급력에 공감하는 많은 후원자들이 매년 100만 원의 후원금을 내주었으나, 지난해부터 코로나 여파로 후원자가 급격히 줄어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었다. 매년 10명씩 선정해 지원하던 것을 올해는 5명으로 축소되었다.

엄홍길휴먼재단이라 하면 네팔에 학교 짓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휴먼재단은 인간 애愛를 실천하는 여러 활동을 해왔다. 2009년부터 네팔 오지마을에 17개의 휴먼스쿨을 지었으며, 학교만 짓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학용품과 교육에 필요한 설비를 지원하는 등 실질적인 교육이 이어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했다.

학교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구멍 뚫려 비바람이 들이치는 흙집을 교실로 탈바꿈시키고 화장실을 지어 위생에 대한 개념을 심었다. 네팔 산골 오지마을은 우리나라 6·25 전쟁이 끝난 직후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그래서일까, 휴먼스쿨이 세워진 오지마을 사람들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희망의 씨앗은 우리나라 청년에게도 심어 주었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낭비일 뿐이다!’라는 기치 아래 DMZ평화통일대장정을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진행했다. 매년 여름 15박16일간 휴전선 인근 DMZ길을 걷는 350km 행군을 한 것. 매년 100~150여 명의 대학생들이 뙤약볕 아래 청춘을 걸고 도전에 나섰고, 값진 성취감을 누렸다. 2017년 여름의 대장정에 참가했던 허주강(당시 한국기술교육대 4학년)씨의 소감문이다.

‘완주에 성공한 대원들은 역경지도사라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사실 나는 이런 자격을 받기 부담스러웠다. 진행팀, 캠프팀, 대원들, 여러 후원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화합과 협동을 통해 99명의 대원이 완주라는 보람찬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강렬했던 15일이 끝나고 나를 되돌아보니 확실히 성장했다. 대장정 중 느꼈던 것들을 가슴에 새겨 실천한다면 어떤 역경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값진 경험을 할 기회를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DMZ평화통일대장정은 매년 3대 1이 넘는 경쟁률로 청년들이 지원하는 등 젊은층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밖에도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운영, 캠핑과 등산 체험을 통해 모험심을 길러 주었다. 매년 연말에는 사회의 귀감이 된 이들을 선정해 도전상과 휴먼상을 시상했다.

간혹 어떤 이들은 엄홍길 대장의 원정에서 고인이 된 후배들을 거론하며, 엄 대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제로 떠밀리듯 히말라야에 간 산악인은 없다. 스스로 원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떠났다. 다만 대자연의 거대한 힘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했다. 

엄 대장만큼 오랫동안 산악인 유가족을 살뜰히 지원해 온 원정대 대장이 몇이나 될까. 그는  8,000m 고산 등반에서 은퇴했지만, 목숨 걸고 히말라야를 등반하듯 굳건한 선행을 묵묵히 밀어붙여 왔다.

그가 처음 히말라야에 학교를 짓겠다고 했을 때나 산악인 유가족을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불가능하다고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작은 걸음의 기적을, 10년 넘도록 휴먼재단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코로나로 인한 후원자 감소라는 막강한 돌풍 앞에 서있다. 선한 파급력의 힘을 발판으로 정면 돌파할 것을 기대한다.

월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