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대대장님

군부대 민간조리사 일을 하며 최근 근무지 이동이 있었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창 힘든 적응의 시간을 보내던 중, 2년 전 파견 나갔던 부대의 지휘관이셨던 오홍석 대대장님을 만났다. 어찌나 눈물 나게 반가웠던지 마치 매운 시집살이를 하던 중 친정 오라버니를 만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대대장님도 낯선 환경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애처로이 바라보시며 어떻게든 도움이 돼 주시겠다는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2년 전에도 그랬었다. 처음 간담회가 있어 대대장님을 찾아갔을 때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체코의 민족주의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애국심을 담아 6년에 걸쳐 작곡했다는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제2곡 ‘몰다우’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된 대대장님의 책상 위를 흘끔거리면서 손수 물을 끓여 찻잎을 우려내시던 대대장님의 조용하고 따뜻한 인품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대장님은 향긋한 차를 따라주시면서 나에게 기대가 크다며 편안한 어조로 말문을 여셨다. 취사장이 부대에서 가장 소외돼 있지만 전투력의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곳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성실하게 임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조리를 주특기로 가진 조리병들도 있었지만 부추와 파는 물론이고 파프리카와 피망이 어떻게 다른지, 때론 국간장과 양조간장도 구분하지 못 하는 조리 신병도 더러 있었다.

주방 칼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온 어린 조카뻘의 조리병들과 때론 힘도 들었지만 웃고 땀 흘리면서 시간은 흘렀다. 그렇게 조리를 하며 튀김과 찌개 냄새로 내 몸을 훈증하면서도 고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안식처는 부대 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복도에는 ‘대대장님의 서재’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문학과 철학, 과학과 심리를 비롯한 스테디셀러와 최근의 베스트셀러가 늘 진열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써놓은 대대장님의 서평이 벽면에 게시돼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읽었던 책도 있었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책들도 있어서 공감하는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부대 내 취사장은 사계절 중 여름이 가장 힘들다. 늘 불을 써야 하는 곳이고 머리에는 두건, 입에는 마스크, 손에는 긴 고무장갑과 무릎까지 오는 장화, 그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비닐 앞치마로 무장하기 때문이다. 모두 부엉이처럼 눈만 동그랗게 내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데치고 볶고 무치고 튀김을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자에게 주어진 휴식은 더 꿀맛이다. 조리병을 포함해 용사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휴가, 포상 휴가를 대대장님께서 주셨다. 공로를 치하하는 표창장과 함께 달콤한 이틀간의 포상 휴가를 처음 받아본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지칠 때까지 자랑하곤 했다.

언제나 귀를 열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던 대대장님께서 임기를 마치고 전출을 가시던 날, 정성스레 쓰신 손편지를 용사를 통해 전해주고 가셨다. 곱게 물든 낙엽만큼이나 아름답고 뭉클한 편지를 읽으며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저 아쉬움만 가득했었는데…. 오홍석 대대장님! 힘든 시간 속에서 다시 뵙게 돼 정말 감사드립니다.

군부대 민간조리사 오영주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