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교청정봉사단 이끌며 어르신·청소년·다문화가족 지원…재난현장도 누벼
청각장애인 위한 투명마스크도 제작·기부…작년 김만덕상 봉사 부문 수상

"어버이날을 맞아 준비한 전복삼계탕을 앞을 못 보는 분께 갖다 드렸는데, 세상 태어나 이런 건 처음 먹어본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김옥산 수운교청정봉사단 단장
김옥산 수운교청정봉사단 단장이 제주 갈천을 활용해 제작한 청각장애인을 위한 마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촬영 전지혜]

김옥산(67) 제주 수운교청정봉사단 단장은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어르신들의 얘기를 하나둘 꺼내다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옥돔을 갖다 드렸더니 '제사 때나 쓰는 귀한 생선을 어떻게 먹느냐'는 분도 있었다. 반찬 배달 가면 챙겨놨던 채소를 꺼내 주기도 하고, 손자를 데려가면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주기도 한다"며 봉사활동을 하며 기쁜 일도, 눈물 나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김 단장은 1990년 한국부인회 활동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사회복지시설, 어르신, 장애인, 청소년, 다문화가족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동안 어르신들을 위한 급식 봉사와 반찬 나눔을 비롯해 공부방 꾸미기 등 청소년 지원 활동, 장애인을 위한 가구·생필품 지원, 청소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했으며 수재의연금과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41회 김만덕상 봉사 부문을 수상했다. 이때 받은 상금 500만원도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을 위해 써달라며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에 기탁했다.

또한 그가 이끄는 수운교청정봉사단은 올해 행정안전부의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수운교청정봉사단 행안부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 수상
[수운교청정봉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도내에서는 손에 꼽힐만한 봉사와 나눔 이력을 가진 그에게 어떻게 봉사를 시작하게 됐느냐고 묻자, 결혼 후 23년간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셨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김 단장은 "시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4년을 수발했고,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직접 모셨다"며 그렇게 돌봄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봉사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베테랑이 됐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봉사활동이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김 단장은 "처음 중증장애인 요양원에 봉사하러 갔을 때 냄새 때문에 한동안은 요양원에서 내어주는 차를 마시지 못했다"며 "치매에 걸린 할머니도 직접 모셨기에 괜찮을 줄 알았지만, 마음의 벽이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봉사활동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그 뒤로는 어디서든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지난해 9월 태풍 내습 후 알작지해변 환경 정비
[수운교청정봉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단장이 이끄는 수운교청정봉사단은 그동안 도내에서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행안부가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를 소개할 때 수운교청정봉사단을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뭉친 선행 어벤져스'라고 칭했는데, 영화 속 영웅처럼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봉사단은 태풍이 제주를 휩쓴 뒤 피해 현장을 찾아가 현장 정리 활동을 벌인다. 지난해에도 태풍으로 어지러워진 제주시 알작지 해변에 새벽부터 찾아가 각종 해양쓰레기를 수거했다.

2016년 1월 폭설로 제주국제공항이 마비됐을 때는 공항에 발이 묶인 체류객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나눠주기도 했다.

4·3희생자추념식 날이면 동이 트기도 전에 4·3평화공원에 찾아가 행사장을 찾은 유족과 도민에게 차를 나눠주며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역할도 한다.

가스 폭발 등 재난 현장에 찾아가 현장 정리 등 지원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김 단장은 "수해 현장에 가다가 차가 파손되기도 하고, 침수된 곳에서 작업하다가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었다"며 그런데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달려가게 된다고 말했다.

갈천 활용 마스크 만들기
[수운교청정봉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단의 열정은 코로나19 사태 때도 빛났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입 모양을 보면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은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운데가 투명한 마스크를 직접 제작해 기부한 것이다.

봉사단은 KF94 마스크와 식당 등에서 쓰는 투명한 위생 플라스틱 입 가리개를 구해 직접 가위질을 하고 재봉틀을 돌려 마스크를 제작, 장애인복지관에 기부했다.

제주의 빛깔을 담은 갈천을 활용한 마스크도 제작해 지난해 3월 제주교도소와 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은 대구·경북 자원봉사센터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사활동에 제약이 생겨 아쉬움이 많다"며 "매주 수요일에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점심 대접도 했었는데 요새는 거리두기 때문에 반찬 배달만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김치 담그기
[수운교청정봉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는 봉사단이지만, 지자체 사업 보조금 등은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비용을 마련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단장은 "봉사단 행사나 회의 때 식당을 찾기보다는 모여서 국수를 삶아 먹는다"며 "김치를 담가 팔거나 국수 장터를 열어 얻은 이익과 기부금 등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 단장에게 '사람들이 봉사에 동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자 "그런 건 고민할 필요가 없다"며 "시작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사단체에 동참해 대열에 껴서 활동하거나 거창하게 봉사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부터 주변을 돌아보고 조금씩 도움을 주다 보면 봉사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봉사활동을 하러 갈 때 종종 손자들도 데리고 간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는 "항상 젊을 수만은 없으며, 나도 도움이 필요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며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