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다사초교 정경열 선생님

국민학교 3학년 철부지 시절, 담임 선생님의 휴직으로 새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여선생님이셨지만 훤칠한 키와 부리부리한 눈망울로 뭇남자선생님 못지않은 위엄이 넘쳤고, 열 살배기의 눈에는 한마디로 ‘무서운 선생님’으로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교사로서의 첫 발령이라 의도적으로 그런 표정을 짓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현재 대구 다사초에 재직 중인 정경열 선생님이다.

새 담임 선생님과의 학교생활은 걱정과 다르게 하루하루 즐거웠다. 자세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지만 거의 매일 하교 후 교실에 남아서 학급 게시판에 작품을 붙이거나,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한답시고 바지런하게 뛰어다녔던 것 같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사탕이나 당시에는 엄청 귀하게 여겼던 초코파이도 챙겨주시며 사랑을 나눠주셨다. 선생님의 사랑을 받아먹으며 그즈음 ‘나도 이런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자리 잡게 됐던 것 같다.

어느새 소년은 자라서 고등학교 3학년, 재수 생활, 일반대학 졸업, 군 복무, 교육대학 편입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새 학기가 되면 학생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는데, 빠지지 않는 질문은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셨어요?”다. 그때마다 자신 있게 대답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에게 사랑을 나눠주셨던 선생님의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서…. 이제 나도 그렇게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유년 시절 생계로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늘 따뜻한 미소와 손길로 대해주신 선생님의 그 사랑 때문에 매번 진로를 선택할 때마다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줬고 어느덧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교직에 몸담고 있다.

최근 필자는 교육전문직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미력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고 그 만남으로 인한 스스로 성장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교육전문직 전형 합격 소식을 접하고 오랜만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마치 당신의 자식이 합격한 것처럼 과분한 축하와 격려를 해 주셨다. 그러고선 하시는 말씀이 “병철아, 나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퇴임한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지난 35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이들과 호흡하시며 여전히 사랑을 나눠주셨던 선생님이신데, 아직 그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신 분인데 벌써 퇴임이라니. 그것도 정년퇴임이 아닌 명예퇴직….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내리신 결정이었을까’라는 생각과 내 인생의 선생님, 선배, 동료로서의 선생님을 놓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뭐라 말씀을 드릴까 생각할 것도 없이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게 꿈을 심어주신 고마운 선생님, 이젠 선생님의 새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필자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제자가 선생님이 주시는 사랑을 먹으며 자랐을까. 그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적어도 우리는 선생님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지식보다는 삶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으로… 교사로서 가르침의 열정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신 선생님으로… 참 고마운 선생님으로… 그분이 뿌려놓으신 여러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듯 새로운 모습으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하시는 선생님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안병철 대구 덕인초 교사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