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왼쪽)와 친구 김종옥.평생의 친구 김종옥

노년에 마음 통하는 친구 하나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했다. 친구들이 주위에 있어 복 받은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을 한다. 토머스 풀러도 ‘진정한 친구를 가졌다면 당신은 가장 귀중한 것을 가진 셈’이라고 일찍이 설파했다. 그래도 한 사람을 고르라면 10대 빛나던 고교 시절의 단짝 친구 김종옥을 꼽고 싶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 된다고 확신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평소 책 읽기를 즐기며 세상사에 밝은 친구는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엉뚱한(?) 도전을 격려해줬다. 내 무리한 부탁에도 그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후원금을 모았다.

그는 언제나 나를 격려하고 무조건 나를 이해해 준다. 친구는 사교적이며 적극적이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재미있게 산다. 그래서 주변에 늘 사람들이 있다. 그가 있는 자리가 환하게 빛나는 것은 그의 사심 없는 태도와 늘 베푸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부산상고(현재 개성고교) 졸업 후 국민은행에 입행한 그는 초창기에 잠깐 노조 활동도 했지만 유능한 은행원이었다. 재직 시절에는 판소리 동아리에서 국악 실력을 갈고닦았다. 대중가요에도 조예가 깊어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마 수백 곡은 될 것이다.

지점장으로 정년퇴직한 후에는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총동창회 산악회장, 동기회 회장을 맡아 봉사했다. 지금 그가 운영하는 ‘서면 아카데미’에는 참여하는 동기가 많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아카데미’와는 다르다. 주요활동은 내기 당구에 반주를 겸한 저녁 식사 그리고 노래방이다.

3년의 짧은 정치 세계를 떠났을 때 찾아온 허허로움을 극복하려고 나는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났다. 800㎞ 도보여행 기록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발간할 때 친구는 주옥같은 추천사를 책에 실어줬다. 출판기념회 때에는 상경해서 축하해줬고 300권이나 책을 구입해 동문 지인들에게 뿌렸다.

고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그의 고향인 마산의 바닷가에서 그의 중학 친구들과 놀았고 독서실에서 정기권을 끊어 밤새워 공부했다. 당시 유행했던 미국식 영어 회화책으로 공부하고는 엉터리 생활영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무전여행을 끝내고 양산 통도사에서 얻어 탄 관광버스 안에서 그의 노래에 열광해 앙코르를 외치던 여공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친구의 예쁜 사촌 여동생은 내 첫사랑이었다. 수많은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지만 되돌아보니 친구에게는 신세만 졌다. 관중은 제(齊)나라 왕 환공을 춘추 5패의 하나로 만들며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것은 일찍이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며 무조건 이해하고 지지해준 포숙아라는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세상을 떠날 때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종옥’이라고 말할 것 같다.

친구야, 호시절의 도래를 꿈꾸자. 관 뚜껑에 못이 박힐 때까지는 무슨 일이고 일어날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음주는 적당히 즐기고 아무쪼록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가자. 사랑한다. 친구야.

허남정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