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연정자(1932~2022)
 

지난 2010년 고인(오른쪽 두 번째)이 팔순 때 딸들과 찍은 사진. 필자 제공
베토벤, 난 이렇게 꽃이 만개한 긴 터널을 슬픔을 안고 달려 보기는 70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합니다. 베토벤, 당신이 평소 꽃을 지극히 사랑하고 꽃처럼 밝고 아름답게 사시더니 꽃들도 보답차 모두 나와 마지막 배웅을 하는 듯합니다. 베토벤, 난 오늘 베토벤의 영정과 유골함을 마지막으로 가슴에 품으며 선영 장지로 향하는 내내 그동안 스쳐 간 베토벤과의 순간들이 떠올라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토벤, 44년 전 여름이었죠. 내가 처음 대전 동면 바라실 베토벤 집을 찾아갔을 때 그땐 내가 베토벤의 맏사위가 아니고 큰 따님 애인이었죠. 어떻게 혼자 불쑥 찾아갈 생각을 했는지 그때 그 용기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그날 밤 베토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날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죠. 서울 손님이라고 더욱더 귀한 대접을 해 주셨죠. 직접 술을 담가 주셨고, 술이 떨어지면 금방 또 만들어 주셨죠. 저는 그 맛과 정성을 44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베토벤과 난 장모 사위 관계가 됐죠. 딸 부잣집에 맏사위가 된 난 베토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죠. 작은 단칸 신혼집에 오셨을 땐 파자마가 없다던 내 얘길 듣고는 새벽에 면 파자마를 사 오셨죠. 그 당시 대전 바라실에서 서울 신월동까지 오려면 하루 반나절이 더 걸렸는데, 그런 거리를 베토벤은 수시로 오가셨죠.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깜짝깜짝 놀랜다고 하니 베토벤은 각종 약초와 박달나무 베개를 보내 주시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셨죠.

처가는 원래 부잣집이었죠. 동면 마산리 바라실을 걸어가려면 처가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갈 정도였죠. 그 많은 땅이 대청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집안의 기둥이셨던 할아버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2남 5녀와 생활하시던 베토벤은 물질적인 고충이 크셨을 겁니다.

보험회사에 들어가시더니 보험을 들어 주길 부탁했었죠. 그때는 저도 정말 어려워서 쩔쩔매던 시절, 돈 걱정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보험에 가입했지만 계속 유지할 수가 없어 몇 달 내고는 해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회사로 전화까지 하셔서 보험 가입을 권했을까요. 그것도 처음 몇 개월은 베토벤이 직접 내주셨죠. 베토벤이 수당 일부분을 포기하신 거죠.

한번은 교육차 여의도에 오셨다가 내 작은 가게를 찾아오셨죠. 차도 한잔 못 하시고 그냥 가신 게 마음에 걸리고 차비를 드리자 한사코 뿌리치시던 것도 가슴속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베토벤은 항상 바쁘시고 뭔가에 쫓기는 듯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베토벤, 전 처음에는 어머니라고 부르다 머리가 하얀 물감으로 아주 멋있게 변색된 모습이 마치 베토벤 같아 아예 베토벤이라 불렀죠. 베토벤, 내가 베토벤 집에 간다 하면 몇 시간 전부터 문 앞에서 절 기다려 주셨고, 갈 때는 그 먼 버스 정류장까지 칡뿌리며 각종 먹을거리를 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배웅을 나와 주셨고, 기차표까지 예매해 주시곤 했었죠. 어떻게든 몇 시간이라도 더 붙잡아 두려고 내가 서울에서 예매한 기차표를 반납하고 다시 끊어 오시곤 했었죠.

베토벤, 저는 작은 슈퍼를 하다 보니 정말 시간이 없더군요. 자주 찾아뵀더라면 미련이 덜하련만 그게 바로 저의 그릇인가 봅니다. 베토벤, 장모님! 오늘 밤 마지막으로 불러 보는 이름입니다. 영원히 안 잊겠습니다. 당신의 사랑 그리고 인자함을….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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