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소리 잡지·책 제작 참여…대학 봉사동아리 계기로 봉사 삶
"책 녹음때 등장인물 많으면 힘들어…생필품에 점자표기 제대로 됐으면" 

2017년 상반기 낭독봉사자 교육 [강선주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소리 잡지와 소리 도서를 틀면 나오는 낭독봉사자 강선주(43) 씨. 그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나면 그는 여고생 랩퍼도 되고 주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나운서도 됐다가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장으로도 변신한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강씨는 여러 목소리를 지닌 '팔색조 성우'로 통한다.

강씨는 2015년부터 8년째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 발간 소리 잡지와 도서 제작에 참여해 낭독 봉사를 해오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대학생 때 8개 대학 연합 봉사동아리에 가입해 격주로 사회복지관을 찾아 미술지도 등을 했다. 봉사하는 삶이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분이 된 계기다.

대학 졸업 후 미술학원에서 학생을 지도하며 틈틈이 준비해 2011년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땄다. 3년 후 보육교사 자격증도 추가로 취득했다.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그는 늦깎이 성우를 꿈꿨다.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성우 양성 학원에 다니며 2014∼2016년 3년 내리 방송사 성우 공채시험을 봤다.

"쉽지 않더라고요. 한 해 경쟁률이 700대 1을 넘기도 했고, 그때 배운 발성법, 호흡법 등이 지금 큰 도움이 돼요. 꿈을 향한 도전도 했고 낭독 봉사에도 도움이 되니 후회는 없어요."

낭독 봉사는 성우 시험 준비 2년 차이던 2015년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낭독봉사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도전해 시작하게 됐다.

목소리만 팔색조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다.

강씨는 미술학원 교사를 하면서 작품 활동도 병행했는데 재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2008년부터 종종 하던 골프장 캐디 일이 지금은 본업이 됐다.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그는 퇴근 후 밤 시간대에 집에서 1∼2시간씩 소리 잡지나 소리 도서 녹음을 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쉬는 날 점자도서관 스튜디오를 찾아 목소리 녹음을 했는데 요새는 시간을 조정하기 쉬워 재택근무가 더 편하다고 했다.
 

2017년 경기도의 한 도서관 스튜디오에서 시각장애인을 위 낭독봉사 중인 강선주씨 [강선주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기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발간하는 소리 잡지 3종은 낭독 봉사자 27명이 3개 조로 나눠 3달에 한 번씩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소리 잡지 3종은 경제·사회·시사상식 정보를 전하는 '경기 등대', 교양·수필·문화정보를 다루는 '케이스 매거진', 경기도 및 복지계 최신뉴스를 전하는 '소리 경기'다.

강씨는 "뉴스를 전할 때는 감정 빼고 또박또박 읽는데 시각장애인들 경험을 수필 형식으로 전할 때는 원고를 편안하게 읽는다"고 했다.

낭독 봉사 8년 차인 그에게 가장 어려운 녹음은 도서 녹음이다.

"등장인물이 많아 혼자 여러 배역을 할 때 힘들죠. 2019년 베스트셀러인 델리아 오언스의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내용에 법정 증언 장면이 나오는데 증인들만 수십 명이 나와 역할을 바꿔가며 연기하느라 힘들었어요."

강씨는 "여고생 랩퍼를 연기하려고 아는 분 딸에게 직접 랩을 배워 흉내를 냈는데 반의반도 못살려 아쉬웠다"며 "베스트셀러는 소리 도서를 기다리는 분이 많아 늦지 않게 단원별로 끊어 제작을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행사 사회자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각장애인 관련 영상물 제작 과정에서 내레이션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좋게 본 분이 추천해 올해 4월 안양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행사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봤고, 최근엔 고양시 일산에서 열린 장애인 관련 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다.

강씨는 "낭독 봉사와 또 다른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다"며 행사 사회는 요청이 들어오면 계속해서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올해 10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강선주씨 [강선주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에게 이 같은 봉사를 수년째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을 묻자 "대학 때부터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봉사가 자연스레 제 삶의 일부분이 됐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힐링이 된다"고 답했다.

그는 시각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적어도 식료품만이라도 점자 표기가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씨는 "IT 기술이 각 분야에 접목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점자 표기가 안 된 생필품이 생각보다 많다"며 "특히 식료품의 유통기한 표기는 시각 장애인들이 읽기 편하게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