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안정마을 이천성 이장

전남 해남군 안정마을 이천성 이장은 “대학에서 배운 것과 농촌 현장의 차이가 크다”며 “아직 마을 어르신들 집안 사정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 대 이어 농사 각오로 정착
이웃들 권유로 첫발…작년 재선
TV수리·보조금 신청까지 ‘척척’
“농민도 좋은 직업 인정받았으면”

이천성 이장(29)이 사는 전남 해남군 마산면의 인구는 2월 말 기준 2313명이다. 면사무소와 우체국, 경찰관서 등이 있는 면 중심지에 그 흔한 ‘24시간 편의점’도 없다. 해남의 14개 읍·면 중 편의점이 없는 유일한 곳이 마산면이다.

이곳에서 ‘재선 이장’을 하는 그는 해남군 이장 514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이씨가 이장을 맡은 안정마을은 50여가구에 70여명의 주민이 산다. 마을 ‘청년회’의 명칭을 ‘청·장년회’로 바꿔 65세까지 회원으로 받고 있는데도 회원이 20명에 불과할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곳이다.

지난달 22일 안정마을회관에서 만난 이 이장은 “제가 초·중학교 다닐 때는 마산면 소재지도 규모가 꽤 컸는데 인근 목포시로 향하는 도로가 뚫리면서 상권이 다 죽었다”면서 “폐교된 마을 중학교에는 ‘노인요양병원’이 들어섰다”고 했다.

이런 마을에서 이 이장은 보기 힘든 ‘청년’이다. 그가 마을을 떠나 본 것은 농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3년뿐이다. 지난해 3월 결혼한 그는 조만간 집수리가 끝나면 읍내 아파트에 사는 아내도 마을로 이주시킬 계획이다.

3형제 중 막내인 그는 “형제 중 누군가는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삼아온 부모님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면서 “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한 것도 고향에서 전문 농업인으로 정착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만9800㎡의 농지에서 첫 농사를 시작한 젊은 농부의 진정성을 알아본 주민들은 “마을에서 계속 살 거면 이장을 해라”고 권했다. 2020년 1월 이씨는 26세 나이로 처음 2년 임기의 이장직을 맡았고 지난해 재선됐다.

‘농촌 마을 이장’에 대해 이씨는 “10급 공무원”이라고 표현했다. 정식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무원이 처리해야 할 각종 업무를 대신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경작 사실확인이나 전입신고서, 마을 보조금 신청, 지역 농협의 영농회 관련 업무 등이 이장의 일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때에는 마스크 등 방역 물품을 나눠주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생활지원금’ 등의 신청 등도 도와야 했다. 이씨는 “어르신들은 간단한 서류 작성도 어려워하시기 때문에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다”면서 “농사일이 바쁘더라도 직접 주민들이 면사무소로 가야 하는 일이면 모시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그는 ‘해결사’로 통한다. 골목길 가로등이 안 켜져도, 텔레비전이 안 나와도, 조작이 어려운 휴대폰이 갑자기 먹통이 됐을 때도 주민들은 그를 찾는다. 진기옥 할머니(87)는 “손주뻘이지만 우리 마을이 이장 하나는 정말 잘 뒀다. 어른들한테 잘하고, 착하고 보물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대학 나온 젊은 이장’이지만 이씨는 아직 배울 게 많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것과 농촌 현장의 차이가 크다.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라면서 “아직 마을 어르신들 집안 사정도 속속들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10년 뒤 미래’를 묻자 그는 말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게 도시 노동자와 견줘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체험 농업 등과 연계해 마을에 많은 사람이 찾으면 편의점도 생기지 않을까요?”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