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나의 칠순 생일에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 사랑합니다 - 나의 아내 정경원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절친한 친구가 자기가 사는 약수동 동네에 착하다고 소문이 난 예쁜 아가씨가 있는데 소개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전 약속도 없이 친구가 지금의 집사람과 함께 제가 근무하는 파출소로 찾아와서 첫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너무 수수하고 솔직해 보이고 아주 대화하기 편해 보이는 아가씨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살인적인 미소랄까 첫눈에 나의 몸을 몽땅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중전화와 손편지로 서로를 알아가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2년 남짓 교제를 하다 청혼을 하고 결혼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1982년 12월 26일 결혼식 전날부터 축하를 해주듯이 함박눈이 밤새도록 쌓여서 도로에 차가 한 대도 다니질 못해 한 시간가량을 걸어서 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축복의 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가는 장인, 장모님 그리고 딸 여섯에 아들이 둘이 있었습니다. 그중 집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결혼을 한다는 셋째딸이었습니다. 처가는 이웃들도 부러워하는 조용하고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집사람은 동생들을 자기 몸은 돌볼 겨를도 없이 잘 챙겨주고 보살펴주었습니다. 부모에게는 효녀이고 언니들과도 잘 지내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달려들어서 결국 해결을 하고 마는 부러울 정도로 우애가 깊은 가족이었습니다.

결혼 후 형편이 어려워서 근무지 옆에 허술한 한옥에 월세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봉사 모범 경찰관으로 선정되어 불우이웃과 노인정 등에 봉사하는 것이 집사람과 저의 즐거움과 행복이었습니다. 봉사 장소에는 아들딸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적은 봉급에서도 돈을 조금씩 모아서 라면, 연탄을 사서 집사람과 함께 손수 배달도 많이 했습니다. 노인정 경로잔치와 일일 야유회도 주선했습니다.

그렇게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봉사를 하던 중 주민들이 저를 근무지(봉천5동 파출소)에서 다른 곳으로 전근시키지 말라는 민원을 제기하여 한 곳에서 13년이란 오랜 기간 봉사경찰관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청룡봉사상 신상에도 선정됐고, 잡지와 신문에도 봉사경찰관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무부장관, 서울시장, 치안본부장 등 표창을 다수 받았고, 노인회장의 감사패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영광은 힘든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불평불만 하지 않고 묵묵히 함께 곁에서 동행하며 격려해주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석 같은 집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의 사랑과 격려 덕분에 공무원 생활 36년을 한점의 흠이나 부끄럼 없이 무사히 마치고 정년을 맞아 퇴직했습니다. 아내에게 모든 공을 돌리겠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지금껏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40년 이상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잠시도 양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당신과 우리 아이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늘 가족에게 하는 말,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남편 주석화(전 경찰공무원)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