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들은 ‘메타버스’에서 무엇을 하나요?

확장 가상세계 ‘메타버스’에서
송편 빚고 춤추고 노래하며
청소년 정책·활동도 함께 고민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만나니
학교폭력·안전교육 참여율 ‘쑥’
“진로 교육도 여기서 해요”지난 9월4일 경기 하남시와 강원 영월군 청소년들이 확장 가상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에 모여 자매도시 교류 활동을 하고 있다. 하남시덕풍청소년문화의집 제공“코로나19 때문에 추석에 어디 안 가고 집에만 있었거든요. 답답해서 ‘제페토’에 왔죠. 친구들이랑 저녁 6시쯤 제페토에서 만나 송편 빚고 춤추고 투호도 해봤어요. 심심해서 예전에 찍은 풍경 사진 전시회도 하고요. 저는 그럼 ‘전국노래자랑’ 방으로 이만 가볼게요!”

지난 2일 메타버스(확장 가상세계) 플랫폼 ‘제페토’에서 만난 열네살 ‘귤귤’이 기자에게 해준 말이다. 요즘 십대들은 제페토, 이프랜드 등 메타버스에서 소통한다기에 기자도 아바타를 만들어 놀러갔다. 아바타라면 싸이월드 ‘미니미’가 떠오르는 세대인 터라, 생각보다 실감나게 내 얼굴을 닮은 제페토 아바타를 만든 뒤 꽤 놀랐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의 가입자는 지난 1월 기준으로 전세계 2억명이다. 사용자의 약 70%가 십대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십대들은 온라인 수업뿐 아니라 ‘온라인 놀이터’에도 더욱 익숙해지고 있다.

용어가 낯선 부모들은 “‘메타버스’가 어디서 타는 버스야?”라고 묻기도 한다. 한데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라면 이제는 메타버스 개념에 익숙해져야 한다. 청소년 10명 중 7명이 메타버스에서 소통하거나 ‘놀이’를 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확장 가상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경기 하남시와 강원 영월군의 청소년참여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십대들이 메타버스에서 만나 실시간으로 자매도시 교류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 30여명이 같은 시각에 한자리에 모인 방법은 다름 아닌 ‘링크 공유하기’를 통해서였다. 하남시덕풍청소년문화의집 제공

게임뿐 아니라 청소년 교류 활동도 메타버스에서 활발해지는 추세다. 지난 9월4일 경기 하남시 덕풍청소년문화의집과 강원 영월군의 청소년들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만나 자매도시 교류 활동을 펼쳤다.

“청소년 참여위원회 활동 2년차인데 딱 코로나19 시기랑 겹치잖아요. 행사가 연기되고 취소되는 것이 많아 저희도 고민을 해본 거죠. ‘코로나 시기에 어떻게 청소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자매도시를 맺은 영월의 친구들과 메타버스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열여덟살인 김예성 하남시청소년참여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영월군의 친구들과 하남시청소년참여위원회는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의 가상 공간 ‘콘퍼런스홀’에서 만났다. 경기 하남시와 강원 영월군이 자매도시 결연을 맺었는데, 이 지역 청소년참여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십대들이 메타버스에서 만나 실시간으로 교류 활동을 진행한 것이다. 학생 30명이 같은 시각에 한자리에 모인 방법은 다름 아닌 ‘링크 공유하기’를 통해서였다.

메타버스에서 만난 경기 하남시와 강원 영월군의 청소년들은 각자 청소년참여위원회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청소년 정책 제언 등에 관한 이야기도 깊게 나눴다. 하남시덕풍청소년문화의집 제공하남시청소년참여위원회와 영월군청소년참여위원회 소속 학생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 동안 콘퍼런스홀 가상 공간에 마련된 큰 화면을 활용했다. 하남과 영월 등 자기가 사는 지역에 관한 홍보 영상을 메타버스에 띄우고 자기소개 피피티(PPT)를 한 장씩 넘겨가며 ‘삼행시’ ‘댄스파티’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을 함께 즐겼다.

첫인사 자리인 만큼 ‘영월정유나’ ‘하남고병민’ 이런 식으로 지역과 자신의 이름을 딴 아바타 닉네임을 설정한 뒤 누군가 자기소개를 마치면 ‘박수’ 아이콘을 누르고 ‘좋아요’ ‘하트’를 표시하며 호응해줬다. 가상 공간이지만 콘퍼런스홀에 마련된 의자에 앉기도 하고 목소리가 필요한 시간에는 ‘보이스’ 기능을 켠 뒤 실시간으로 소통을 이어갔다.

서로 다른 두 도시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청소년 정책 제언에 관한 이야기도 깊게 나눴다. 지역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를 개발하는 방법이나 특산물 활용법, 청소년만을 위한 지역 축제 기획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김예성 위원장과 성아영 영월청소년참여위원장은 “직접 얼굴 보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상황이 안 됐다. 한데 메타버스에서 만나 평소 청소년 활동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메타버스에서 감정이나 움직임 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하남-영월 자매도시 교류 활동은 참석한 십대들이 메타버스에서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요즘은 청소년과 경찰이 메타버스에서 만난다. 부담스러운 회색빛 경찰서 건물이 아닌 알록달록 잘 꾸며진 가상 공간에서 약속을 잡고 만난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제복을 입은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학교전담 경찰관들이 확장 가상세계에서 십대들과 모여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토론을 여는 것이다.

경기 일산서부경찰서 명예경찰 겸 청소년 정책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십대 9명과 현직 경찰관들은 지난 7월19일 제페토에서 만나 학교폭력 이슈에 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일산서부경찰서 경찰관들과 십대들은 각자 아바타를 만든 뒤 가상 공간에 마련된 교실에 모여 학교폭력 예방법, 문제점 등에 대해 말했다. 대화를 마친 뒤에는 청소년들과 경찰관이 메타버스에서 함께 ‘셀카’를 찍으며 토론회를 마쳤다.

지난 7월19일 메타버스에서 학교전담 경찰관들과 청소년 9명이 만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과 토론을 진행했다. 일산서부경찰서 제공일산서부경찰서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등으로 대면 예방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방안을 떠올렸다”며 “청소년들 사이에서 익숙한 플랫폼을 활용하니 기존의 학교폭력 예방 활동 때보다 호응이 컸다”고 말했다. “딱딱한 회의 분위기 등 기존 방식을 벗어나 보니 청소년들도 더 편하게 의견을 말하는 분위기가 되더군요.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맞춰 메타버스를 활용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전개해나가면 십대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에서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위기청소년 마음치유 심리극’을 진행했다.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 학교 밖 청소년 등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리극을 활용해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방식이다. 상담에 익숙하지 않은 위기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메타버스에서의 ‘마음치유 심리극’은 기존의 대면 진행 방식보다 청소년이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를 매개로 소통하기 때문에 대면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부담감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메타버스는 청소년을 위한 안전교육에도 활용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9월15~17일에 ‘2021 메타버스 서울안전한마당’을 열고 안전교육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확장 가상세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이프랜드’ 등에 안전체험 코너, 안전작품 전시장 등을 설치한 서울안전한마당 행사장을 구현한 것이다.

청소년 등이 가상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안전체험 게임을 하고 숨어 있는 행사 포스터 찾기 이벤트에 참가하며 1만여명이 접속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안전체험 게임에 참가한 닉네임 ‘소방대원’ 학생은 “게임하듯 돌아다니며 행사에 참여했더니 자연스레 안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세상에 ‘우리가 진짜 원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있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은하수학교의 공동대표인 김민정(석정여고1) 학생은 “확장 가상세계에 ‘우리가 꿈꾸는 상상학교, 메타버스에서 우리 학교 만들자’라는 콘셉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청소년이 원하는 배움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해보겠다는 취지다. 십대들이 주도하는 가상의 학교 공간,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부에 대해 고민하다가 메타버스에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코로나19 이후로 이제 다들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져서 ‘가상 공간에서의 배움’에도 거부감이 없거든요. 우리가 기획하고 주도하는 ‘학교 만들기’ 활동이 기대됩니다.”

지난 9월11일 경북 김천시는 확장 가상세계인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청소년 진로·인성 캠프를 진행했다. 김천시 제공메타버스를 통한 청소년 진로·인성 교육도 열리고 있다. 경북 김천시는 10월4일과 9월11일에 ‘메타버스 타고 떠나는 청소년 진로·인성캠프’를 마련했다. 이번 진로·인성캠프는 ‘게더타운’이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 학습전략검사(MLST), 앱을 활용한 프레디저 진로 설계, 마음 챙김 명상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아직은 메타버스가 낯선 일부 십대들도 이번 캠프를 통해 확장 가상세계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송아무개 학생은 “마음 챙김이라는 개념을 배운 뒤 자아존중감, 진짜 내 마음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아동·청소년 보호에 관해 여성가족부에서 전문가 간담회를 여는 등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용자의 대다수가 십대인 만큼 확장 가상세계에서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윤리적 문제 상황에 대한 교육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희진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상담팀장은 “최근 아이가 메타버스에서 음란성 발언을 접했다며 보호자들이 교육 의뢰를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메타버스를 비롯한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서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과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