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도 남한도 배울 것 많아요" | news | 2008-02-28 |
한국에 유학 온 김일성대 출신 베트남 공무원
평양 사람들 외국인에 친절… 김일성대생들 정말 치열하게 공부
KDI 국제정책대학원 올해 입학 "한국의 성공 부럽고 놀라워"
북한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베트남 공무원 부 비엣 느아(Vu, Viet Nga·28)씨가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2월 11일부터 한국 대학원생으로서 수업을 듣고 있다. 중국(조선족) 외 타국 학생이 북한에서 받은 학사학위로 이 학교 석사과정에 합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 공상부(한국의 산업자원부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부서) 아시아태평양국 한국시장담당관인 느아씨는 평양 주재 베트남대사관 무관(대좌)으로 발령 난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졸업 후 평양으로 건너갔다. 평양에서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느아씨는 2001년 12월 조선어학과(한국의 국어국문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두 과목만 4점(B학점)이고 나머지는 모두 5점(A학점)을 받았다.
- ▲ KDI 국제정책대학원 도서관 영어방송 청취기 앞에 앉아있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베트남 공무원 부 비엣 느아씨 /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느아씨는 “업무상 한국의 산업자원부 베트남 담당 공무원과 자주 접촉해 한국말을 잊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북한에 갔을 때 조선말을 전혀 몰라 6개월 넘게 고생했어요. 한국에서는 ‘어미’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토’라고 해요. 토를 배우는 게 정말 힘들어요. 특히 존경토(존댓말)와 지방어 공부가 힘들어요. 함경도 사투리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어요. 억세고요.”
- ▲ 북한 최고 명문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은 1946년 10월 1일 개교했다. 평양 대성구역 룡남산 기슭에 위치한 이 대학에는 3개 단과대, 12개 학부에 1만2000여명이 재학 중이다. / photo 조선일보 DB
“동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묘향산으로 갔는데 차가 하나도 안 막혔어요. 서울과 달리 평양에는 차가 많지 않아요. 거리에서 교통 정리하는 여자 경찰들은 놀라울 만큼 미인이었어요. 제가 만난 평양 여성 대부분이 미인이었어요. 빙상관(스케이트장)은 가격이 제법 비쌌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람이 많았어요. 평양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해요. 친구들이랑 빙상관에 자주 놀러갔죠.”
“평양 음식은 서울 음식처럼 맵고 짜지 않아 좋았다”고 한다. 평양 옥류관 냉면보다 더 맛있는 냉면이 있다는 말도 들려줬다.
“김일성종합대학 기숙사 식당 냉면이 최고입니다. 옥류관 냉면보다 더 맛있어요. 평양 사람들이 단고기(개고기)도 좋아해요. 대학교 앞에 단고기 파는 집이 있어요. 가끔 친구들이랑 단고기 먹으러 갔어요.”
- ▲ 느아씨의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장
“시험을 보고 성적을 받는데 최우등 A학점은 5점, B학점은 4점이에요. 5점부터 1점까지 있어요. 서울에서는 교수님이란 호칭을 썼는데 평양에서는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렀고요. 수업이 끝나면 인민학습당에 가서 공부를 해요. 김일성대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요. 북한 최고 수재들만 모였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평양 학생들은 음악과 체육에도 능하다고 한다.
“부러웠어요. 평양 학생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특히 친구들이 아코디언 연주를 참 잘했어요. 체육 교육도 체계적으로 받아요. 대학에서도 체육은 아주 중요한 수업이에요. 대학 영어 시간에는 문법 교육보다 말하기, 쓰기 교육을 더 많이 시켰어요. 저는 그때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어요.”
드라마를 좋아하는 그는 한국 드라마를 빠짐 없이 본다고 했다. 평양에서도 재미있게 본 TV 드라마가 몇 편 있다고 한다.
“홍길동이란 드라마가 유명했어요. 남자 배우가 무척 잘 생겼는데 이름이 기억나질 않네요. 수년간 계속 방영된 ‘민족과 운명’이란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어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조선 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보여주는 드라마예요.”
느아씨는 베트남 하노이 추반안(Chuban an) 중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추반안 중학교는 한국으로 치면 특수목적학교로 영재를 선발해 교육하는 학교다. 그의 아버지는 군 대좌로 전역해 현재 퇴역군인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처럼 행정고시 제도로 공무원을 뽑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시험을 치러 인원을 충원한다. 느아씨는 당시 무역부 한국담당관을 뽑는 공채에서 100대 1에 가까운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당시 영어·한국어·행정법·경제학 등 네 과목 시험을 봤다고 한다.
“한국의 성공을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 한국은 베트남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식민지시대를 겪었고 전쟁을 겪었고 역사적으로 외침이 잦았잖아요. 그리고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아요. 잘살겠다는 의지가 강하고요. 또 한국도 과거 가난한 나라였어요. 섬유 산업부터 시작한 점도 비슷하고요.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룩한 성과를 보면 부럽고 놀라워요.
베트남도 그렇게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KDI국제정책대학원 정책학 과정은 아시아에서 유명해요. 이미 이곳을 다녀간 공무원 선배도 많고요. 공무원 생활을 하며 한국 산업자원부 공무원들과 접촉을 하다 보니 한국 공무원 사회가 참 잘 짜여 있다고 느꼈어요. 많이 배우고 싶어요.”
2008년 KDI 국제정책대학원 정책학 과정 입학생 111명 중 67명이 외국인. 이 중에는 이라크 정부 추천으로 온 이라크 공무원과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온 공무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공무원도 있다. 모두 한국 정부가 학비를 지원하는 학생들이다. 과거 미 국무성 장학금으로 미국에서 유학한 한국 공무원과 비슷한 사례다.
“한국은 베트남의 5대 무역국이고 외국인 투자로는 1위인 대국이에요. 한국의 성공 비법을 많이 배우고 돌아가서 베트남이 발전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위클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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