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를 보낸 자리에 시가 쏟아져” | news | 2008-03-18 |
삶이 힘들고 하루가 버거울 때, 우리에겐 늘 이해인(62·사진) 수녀의 말씀이 있었다. 어린 아기 젖 보채듯이, 우리는 넘어졌을 때마다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지난해 4월 미국 대학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이 부끄러운 슬픔 속에/우리는 지금/어떻게 울어야 하겠습니까/어떻게 기도해야 하겠습니까’(본지 4월23일자 4면)라고 애도의 시를 읊었고, 한 달쯤 뒤 ‘영원한 소년’ 피천득 선생이 돌아갔을 때도 영결식에서 추도의 말씀을 읽었다. 우리에게 이해인 수녀는 늘 사랑의 시인이었다. 영원히 그럴 줄만 알았다. 예의 그 환한 웃음 지어보이며, 지친 우리 포근히 감싸안을 줄만 알았다.
하나 그도 사람이었다. 한 명의 자식이었고, 딸이었다. 이해인 수녀의 여덟 번째 시집 『작은 기쁨』(열림원) 읽고난 다음에야 그 빤한 이치를 깨달았다. 그는 지난해 9월 어머니를 여의었다. 몇몇 지인에게만 부고를 알린 채 조용히 치른 모친상이었다.
‘엄마가 떠나신 뒤/나의 치통도 더 심해졌다/무엇을 먹어도/맛을 모르겠고/아프기만 하다//엄마가 떠나신 뒤/골다공증도 더 심해졌다/구멍 난 뼈엔 바람만 가득하고/조금 남은 기쁨의 양분도/다 빠져나갔다//그러나 더 두려운 아픔은/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이는 것/예쁘던 삶이 갑자기 시들해지는 것/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고/하루하루가 서먹한 것’(‘사별일기’ 부분)아마도 처음인 듯싶다. 이해인 수녀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시집엔 인용한 시편 말고도 돌아간 엄마를 기리는, 엄마의 빈자리를 응시하는 시편이 너덧 편 더 있다.
“엄마를 보내고서 갑자기 시가 쏟아졌어요. 기도처럼 쏟아져 나왔어요. 이번 시집에 실린 103편은 모두 작년에 일을 당하고 난 뒤에 쓴 시예요. 처음엔 슬펐지만 우울한 마음은 금방 가라앉았어요. 다시 삶의 기쁨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시인의 말마따나 언뜻 시집은, 기쁨의 노래로 충만하다.
꼼꼼히 들여다 보지 않고선 시인의 상처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새삼 경이롭다. 자신의 아픔은 꾹꾹 누르고 남의 아픔은 감싸안는 일, 그리하여 작으나마 삶의 기쁨을 찾으려는 태도는 아무나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은 올해로 서원(誓願) 40년을 맞았다.
“제가 쓰는 시가 조그만 위로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40년 수녀 생활에서 얻은 작은 결론이랄까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 외로운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심부름이라고 믿습니다.
”시인에겐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편지가 배달된다. e-메일도 무수히 들어온다. 그에게 따뜻한 위로의 한 말씀 듣고 싶어서다. 모든 편지에 일일이 답하진 못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는 답장을 보낸다. 편지는 꼭 손으로 써서 보낸다. 시인은 “한 통의 편지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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