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베풀 수 있더라구요" 노숙인들의 아름다운 자활 여행 | news | 2008-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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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저녁, 안개비가 내리는 서울 을지로입구역에 노숙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짧게는 열흘, 길게는 10년 넘게 노숙생활을 해온 이들이 말끔히 목욕까지 한 모습으로 모인 것은, 기름 유출로 신음하는 충남 태안으로 가기 위해서다.
노숙인 지원 단체 '거리의 천사들'을 통해 서로 만난 5명의 노숙인들은 기름때 제거 작업을 함께 할 단체의 활동가들과 인사한 뒤 자원봉사 계획을 전해 듣고 늦은 밤 태안을 향했다.
이튿날 아침, 아직 쌀쌀함이 감도는 충남 태안의 계목항. 전날 밤 태안에 도착해 숙소에 몸을 뉘었던 노숙인 봉사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방제복을 나눠주고 안내를 하며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를 안내하는 일을 맡은 건 처음이라는 최 모(50)씨. 3년 전 가정불화로 거리에 나온 뒤 을지로 일대를 전전하던 최 씨는 봉사를 통해 베푸는 즐거움을 맛보게 됐다고 말한다. 최씨는 “와서 안내도 하고 봉사를 해보니 뿌듯하다”며 “앞으로 이런 봉사가 있으면 계속했으면 한다”고 멋쩍은 듯 웃음을 보였다.
오전 작업 후 점심 배식을 맡은 김 모(49)씨도 평소와는 반대로 다른 이들에게 식사를 나눠줄 수 있다는 기쁨에 미소가 한가득이다.
“배식을 하면서 내가 늘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만 왔지만 나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봉사활동 내내 이들은 돌에 찌든 기름만을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뿌옇게 흐려진, 세상을 향한 마음 속 창을 닦아내고 있었다.
노숙생활 열흘째에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는 이 모(34) 씨. 젊은 나이지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아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이 씨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똑같이 방제복을 입고 기름을 닦아내는 모습에 ‘나도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힘들 적에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아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새로워졌어요. 자포자기했던 생활도 반성되고..."
이틀간 이어진 태안 봉사활동을 통해 자활의 의지를 다진 이 씨는 서울로 돌아와서는 주유소 직원으로 취직했다. 태안의 바닷가가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져준 이 씨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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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뿐 아니라 지난 2006년 7월부터 '거리의 천사들'을 통해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한 노숙인 32명 가운데 4명은 가정으로 돌아갔고, 22명은 직장을 갖게 됐다.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다 6년 넘게 노숙생활을 한 정모(40)씨는 자원봉사활동에 나선 뒤 현재는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채 빚에 거리를 헤맸던 김모(50)씨(노컷뉴스 3월 17일자 기사)는 이제는 노숙인을 돕는 구세군 직원이 됐다.
'거리의 천사들' 진무두 팀장은 “봉사를 한 번 같이 갔다 오면 본인들이 오히려 매달리며 ‘살 방법이 없겠냐. 꾸준히 봉사를 하고 싶은데 다시 올 때는 노숙인이 아니라 떳떳한 봉사자로 오고 싶다’고 말한다”며 “자신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리의 천사들' 윤건 총무는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분들이 자립하는 것을 제2의 부활로 보고 있는데 그만큼 자립이 힘들어요. 보통 노숙생활 6개월을 하면 3년의 자활기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어섰다가 넘어졌다 하더라도 과정이라고 보고, 긴 호흡으로 긴 사랑의 눈으로 지켜봐주길 바라는 거죠."
'거리의 천사들'이 이어온 1년 반 동안의 노숙인 자원 봉사활동 그리고 세 번의 태안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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