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여중 축구부 14명 ‘기적’ 일궜다 | news | 2009-08-31 |
 |
24일 경남 함안군 함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제17회 여왕기 전국종별여자축구대회' 여중부 결승전. 70분간의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삼례여중(전북 완주군 삼례읍) 선수들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인천 가정여중을 2-1로 꺾고 여중부 '축구 여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창단 10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일궈낸 첫 우승이었다.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운동장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하루 종일 공만 차고/사람 참 환장하겠네/이 내 몸은 삼례여중 축구부란다/남학생들아, 공 찬다고 괄세 마라/이래 봬도 사랑에는 정열적이란다….” 단발머리 소녀들이 연습하다 힘들 때면 목이 메도록 부르던 '축구가'였다.
삼례여중 축구부는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무명의 설움을 겪어왔다. 전교생 250여 명의 삼례여중은 읍 단위 학교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축구부를 두고 있다. 도시 학교에 흔한 인조 잔디 연습장조차 없다. 여자선수들인데도 맨땅 운동장에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어 무릎·허벅지에 상처딱지가 떨어지는 날이 없을 정도다.
큰 대회를 앞두고는 1㎞ 떨어진 한별여고에서 언니들 눈치를 보면서 한밤중에 불을 밝혀 놓고 연습했다. 골키퍼 최윤희(3학년)양은 “흙 때가 잔뜩 묻어 너덜너덜한 운동화를 신고 경기에 출전하면 다른 학교 선수들이 '촌년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키득대곤 했다”고 말했다.
선수들 대부분의 집안 형편도 넉넉지 못하다. 이번 대회 8골을 넣어 MVP로 뽑힌 스트라이커 최빛나(3학년)양의 경우 7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친척집에서 살면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동네축구를 즐기던 소녀를 축구팀 김수철 감독이 선발해 키워낸 경우다.
선수들도 부족한 상태다. 다른 학교가 20~30명의 선수를 보유한 반면 삼례여중의 등록선수는 14명. 그중 2명은 축구를 시작한 지 2~3개월밖에 안 돼 교체선수는 사실상 1명에 불과하다. 창단 초기 축구부는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에서 여학생이 무슨 운동이냐”는 소리를 들으며 찬밥 취급을 받았다. 기숙사는 비가 새고, 벽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년 전 부임한 정태정(57·여) 교장은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노력하는 선수들이 정말 예쁘고 대견하다”며 지원에 나섰다. 교육청·군청을 쫓아다니며 예산을 따와 기숙사를 새단장해 주고, 용품 구입을 도왔다. 수시로 연습장을 찾아 통닭이나 바나나·음료수를 사주며 “꿈을 잃지 말라”며 격려했다.
이에 힘입어 5월 소년체전에서 준우승하며 잠재력을 과시했다. 여왕기 대회를 앞두고는 창단 후 처음으로 학교에서 전지훈련비까지 마련해 줬다.
대회 출전 중 '교장선생님이 다음 달 다른 학교로 옮겨간다'는 소식을 들은 선수들은 “가시는데 멋진 선물을 드리자”며 우승을 다짐하며 투혼을 발휘했다. 체력이 바닥나도 교체선수가 없어 예선전-준결승전-결승전 여섯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어야 했다. 주장인 윤혜리(3학년)양은 “한 게임만 져도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경기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삼례여중 축구팀은 학교의 자랑일 뿐 아니라 우리 고장의 작은 영웅들”이라며 “잔디구장 설치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