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면허 따기가 왜 이리 쉽지 아니한가! | news | 2010-01-11 |
좌충우돌 실수 연발 속, 3개월 만에 딴 운전 면허증
작년 가을,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유유자적 보내고 있던 내게 위험 경보가 삐뽀삐보 울렸다. 운전면허를 따라는 누나의 위협(?) 때문이었다.
집에서 유일한 면허증 소유자란 이유로 부모님의 운전기사 일을 도맡았던 누나, 1년 전만 해도 면허 좀 따라는 잔소리를 귀 꾹 막고 모른척했지만 날이 갈수록 누님의 압박은 심해져 갔고 드디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 쾅! 하고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야, 너 도대체 언제 운전면허 딸 거야? 얼른 따서 나 좀 도와."
더 이상 미뤘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분위기에 난 속으로 '운전면허 못 따면 동생 취급도 못 받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투덜거렸지만 겉으론 "응, 누나 금방 딸게"라고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기 위한 생존본능이었다고나 할까.
"너 설마, 운전면허 시험 탈락하진 않겠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각오해. 모르면 누나한테 물어봐."
그런데, 이어진 누나의 한마디가 내 자존심을 박박 긁었다. 난 욱하는 마음에 까짓 것, 도움 안 받고 운전면허증 따주지 뭐, 라고 다짐했다. 가을날 운전면허 따기, 다르게 생각해보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가을이라 날씨도 좋겠다~ 대학 졸업하면 여유도 없겠단 생각에 말이다.
우습게 본 운전 연습에 큰 코 다치다
그래서 다음날, 시간을 내어 근방의 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다. 상냥한 직원분의 안내를 받으며 기분 좋게 운전 연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운전 면허 쯤이야 별 문제 없이 딸 것이라 생각 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다 따는 운전면허를 젊은 내가 못딸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역시 무난했다.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필기시험을 통과했고, 이어진 기능 연습 과정도 운전 학원 선생님들의 '칭찬세례'를 받으며 합격을 위한 과정이 일사천리 진행되고 있었다. 연습 주행 중, 100점 만점에 95, 100점을 받는 것은 기본, 그래서 합격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정도 자신감만 가졌어도 좋았을 걸, 너무 앞서나간 모양이다. 내 머릿속에서 점점 오만이 싹트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 심심해, 뭔가 다르게 운전해볼까?'
느릿느릿한 운전 연습에 싫증을 느낀 난, 학원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골라서 했다. 천천히 운전해야 할 기능 코스 굴곡을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달리기도 해보고, 날씨가 춥다고 창문도 열지 않고, 주차 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초보가 같잖은 폼을 잡으니 문제가 안 일어날 리 없었다. 급기야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무리하게 가속 페달을 밟는 바람에 차 범퍼가 심하게 긁혀 버린 것이다.
'으악, 어떡해'
사고를 내자, 그 콧대 높던 자신감은 어디로 가버리고 눈 앞이 깜깜했다. 뛰쳐나온 학원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상냥했던 안내원도, 날 칭찬했던 운전 학원 선생님도 모두 비웃는 것만 같았다. 돈은 돈대로 깨지고 자신만만했던 내 자부심도 끝 모를 추락을 하고 말았다.
운전 연습 중에 흔히 있는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좋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 운전대가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운전 연습을 하려다가도 은근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이게 됐다.
운전 면허 시험 앞두고 결국 누나에게 백기투항하다
그래서 치일피일 연습을 미루게 되었고, 결국 '휴식이 필요해'라는 생각으로 운전 연습을 쉬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지났지만 쉬면 나아질 줄 알았던 자신감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학원 마감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아 조급함은 자꾸 커져갔다. 그런데 내가 학원 땡땡이치는 줄로만 아는 누나가 내 속도 모르고 묻는다.
"야, 너 운전면허 언제 따?"
"아… 응응, 곧 따려고."
내가 얼버무리자 누나가 다시 묻는다.
"너 설마, 운전면허 시험,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모르면 나한테 물어."
"에이, 설마 아니야. 절대."
속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따끔한 말이다. 하지만 누나 도움은 안 받기로 다짐한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하기도 뭐했다. 그래서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다시 용기내어 운전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감이 많이 떨어졌기에, 연습에서 60점, 55점. 계속 불합격 점수만 나왔다. 평소 잘하던 주차도 긴장 탓에 삐뚤빼뚤, 가속 페달을 밟고 달렸던 커브길도 걱정 탓에 느릿느릿 가게 됐다. 하지만 내 속도 모르고, 남은 연습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금요일 아침, 기능 시험 뿐이었다. 준비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시험 날짜가 다가오자 걱정이 됐다. 속으로 이대로 가면 무조건 떨어진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결국 다급한 상황에서 믿을 사람은 한사람,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누나에게 SOS를 쳐야만 했다. 불합격 받을 걱정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던 것이다.
"누나! 나 시험 떨어지게 생겼어. 제발 나 좀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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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누나에게 백기투항을 하고 말았다. 자초지종을 알게된 누나는 푸하하 웃으며 내가 실수를 연발했던 운전 과정에 대해서 지적 해준다.
절박했기 때문일까? 누나의 설명은, 운전 학원 선생님들의 그것보다 더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아하, 역시 운전 5년차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모양이라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보게된 운전 시험, 다행히 난 베테랑 운전 실력을 가진 누나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기능시험을 통과했고 도로주행도 합격할 수 있었다. 덕분에 2009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운전면허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다. 그런데 왜일까. 새해. 운전 면허증을 바라보며 기쁨보단, 한 숨이 푹푹 나온다. 자존심, 돈도 다 버린 상처뿐인 영광이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초보 운전 딱지를 붙인 채, 누나더러 운전 연습 하러가자고 떼쓰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우스워 실컷 웃고 말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남들 다하는 운전이 왜 이리도 쉽지 아니한가라고.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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