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보다 사람, 따뜻한 꽃이 더 아름답다 | news | 2010-07-02 |
“…….”
“자, 이곳에 바로 묘종을 심는 거예요. 이렇게.”
“…….”
오늘 처음 농장을 찾은 인근 평내고등학교 특수학급 3학년 권오성 군과 정윤수 군. 교환학생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은 신혜미 직업재활교사의 시범대로 화분흙에 묘종 자리를 만들며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범대로 따라는 하지만 무슨 말에도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이들을 인솔해온 특수교사 도시영 씨는 이들의 이런 모습에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다.
“실내에서는 이정도의 집중력을 기대할 수가 없어요. 오랜 시간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착석훈련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실내작업이 힘든 케이스거든요. 제과제빵도 해보고 목공도 해보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많은 훈련을 해봤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집중했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이제야 딱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아요.”
꽃베고니아 묘종을 옮겨 심고 있는 오성 군에게 작업이 어떠냐고 묻자 그저 웃기만 한다. 윤수 군은 “묘종 좋아해요”라는 말로 작업에 대한 만족도를 나타냈다. 탁 트인 전원에 자리잡은 비닐하우스 안은 학교와는 달리 자유스러운 분위기인데다 흙을 만지며 작업할 수 있어 마치 놀이터에서 흙장난 하듯 편안해 보였다.
“직업재활의 일환으로 1차 산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기존엔 2차 임가공 사업에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실내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했지만 이런 일은 자연스럽게 자연을 접할 수 있어 직업재활뿐만 아니라 원예치료 효과까지 볼 수 있어 실내작업에 지루함을 느꼈던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신혜미 교사 말대로 실제로 복지관 체력단련실에서 보조업무를 맡아 잘 수행하고 있는 조용석(27세)씨의 경우도 농장일에 합류한 지 한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곳 일을 훨씬 더 선호한다고 한다. 체력단련실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 힘들다는 용석 씨, 이곳에 와서 꽃을 키워 내보낼 때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남양주 양정역 근처에 자리 잡은 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지적장애인은 교환학생 3명을 포함해 모두 15명. 1백여 평밖에 안 되는 비닐하우스 규모를 고려해 네댓 명이 번갈아 돌아가면서 작업하고 있다. 꽃망울을 터뜨린 비올라, 데이지, 마가렛, 팬지, 꽃잔디 등이 마치 융단을 깔아놓은 듯 바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곳 기형주 직업재활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요즘 날씨가 안 좋아서 대부분 봄단장을 미루고 있는 추세예요. 저희는 지난 겨울부터 올 2,3월을 목표로 꾸준히 꽃을 심어왔거든요. 대략 1만7천 본을 심었는데 각 기관들이 봄단장을 미루면서 출하시기에 문제가 생겼어요. 초화는 재고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적기에 출하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요즘 인근 복지시설이나 군부대 등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꼭 기간 안에 모두 팔렸으면 좋겠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작년에도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 1백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나머지는 인근 시설에 그냥 나눠주었다는 기형주 팀장. 올해를 터닝 포인트로 삼겠다는 그의 야무진 계획에 생각지도 못했던 ‘꽃샘추위’가 도전장을 내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화훼 샘플을 들고 홍보를 위해 서둘러 하우스를 나선다. 이미 팔린 5천 본으로도 어느 정도 수지가 맞춰졌지만 그냥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
“저희는 보시다시피 비닐하우스 규모는 작고 사람은 많아서 다른 곳에서 생략하는 작업들을 꼼꼼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봉오리 숫자를 결정하는 ‘순 따기’ 작업의 경우, 대형 단지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인데 이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른 곳과 같은 가격에 출하되지만 품질은 월등하다고 할 수 있죠. 같은 숫자의 화분이어도 저희 제품이 훨씬 더 풍성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기형주 팀장이 차를 몰고 나간 후에도 작업은 한동안 묵묵히 진행됐다. 간식 시간이 되자 모두들 손을 씻고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가졌다. 그러던 중, 오늘 처음 현장에 나온 교환학생인 오성 군이 갑자기 선배들이 작업하던 곳으로 슬그머니 다가가 화분에 흙을 퍼 담기 시작했다. 묘종 식재 훈련 틈틈이 바라본 선배들의 작업이 재밌어 보였나 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눈썰미로 대충 흙을 퍼 담기 시작하자 선배인 윤형노(34세) 씨가 다가와 오성 군이 들고 있던 겹쳐진 화분을 슬쩍 분리해 건네준다. 형노 씨는 이곳 초창기 멤버로 제법 작업에 익숙해진 지 오래. 하지만 그도 처음엔 다른 이들처럼 실수가 많았음은 물론이다.
“묘종을 심을 때 충분히 깊게, 그리고 꼭꼭 눌러주지 않으면 나중에 불량이 생겨요. 식물이 살아있는 것이라는 개념도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것도 틈틈이 상기시켜 줘야 해요. 하루는 화분판을 한쪽으로 옮겨 놓으라고 했더니 화분들을 상자 쌓듯이 위로 켜켜이 쌓아놓았더라고요. 결국 일부 화초는 버려야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예에 대한 감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식물도 사람처럼 키가 크며 꽃도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이젠 예전 같은 실수는 거의 없어요.”
현재 이들이 작업하고 있는 곳은 임대 비닐하우스. 1년 단위로 임대하고 있지만 언제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서러운 전세신세여서 복지관에서는 시의 지원을 받아 농장을 직접 짓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드물죠. 화훼는 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 품목으로 지정돼있어 유리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지역 환경조성으로 장애인 작업에 대한 이미지 제고까지 기대할 수 있어 여러 모로 좋은 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채소나 화훼를 재배하는 업체들이 모여 ‘녹색협의체’를 결성해 공동 구매를 기획하는 등, 대책을 모색하고 있어 앞으로 전망이 밝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한적했다. 하지만 봄을 예감한 길 끄트머리에선 이미 푸릇푸릇 녹색의 치열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따뜻함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피워낸 꽃이 그래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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