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맛’으로 일군 어르신 일터 가보니 | news | 2010-08-20 |
“형님, 카레는 처음 만들어보는데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간 좀 봐주세요.”
무더운 여름날 오전 9시, 전북 전주시 중앙동에 있는 ‘친정엄마 반찬가게’ 조리실 안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빨간 색 앞치마에 모자를 쓴 할머니들은 ‘오늘의 요리’인 카레라이스, 간장게장, 메추리알 장조림, 새우볶음, 미역초무침, 애호박볶음 등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쪽에선 버무리고 무치고, 다른 한쪽에선 간보고 볶고 있었다.
이곳은 노인 일자리전담기관인 전주효자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2008년 7월 문을 열었다. 현재 할머니 3명이 반찬을 직접 만들어 팔고 있는데, 특별한 홍보활동을 하지 않고도 입소문만으로 한 달 매출이 900만원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평균 나이는 68세. 건강기준과 면접 등 엄격한 공모절차를 하고, 3개월간 요리와 서비스교육도 받았다. 총관리는 10년간 한식조리장을 역임한 김택상 사회복지사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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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엄마 반찬가게’의 사장이자 직원으로 활동하는 할머니들이 하루하루 일할 수 있어 기쁘다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인기비결이요? 조미료 대신 정성을 듬뿍 넣었죠”
처음에는 김치를 담가 팔았다. 그런데 식사대접 자원봉사를 했던 할머니들의 손맛을 아는 사람들의 입소문 덕택에 매출이 많았다. 지금은 고정고객이 100명이 넘을 정도로 주문량이 늘었다. 이처럼 인기를 끌자 올해부턴 반찬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단골고객들의 요청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주 고객층은 30대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인기비결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담백한 맛을 내는 어르신들의 손맛이다. 기본적인 것은 소금과 마늘로 간을 하고, 나머지는 멸치국물, 파 꽁다리, 무, 표고버섯, 다시마를 푹 우린 육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김택상 사회복지사는 “반드시 국내산 재료만 사용하고, 건강식 반찬 위주로 판매한다”며 “할머니들과 아이디어 회의 끝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우리 전통음식을 맛보이고 싶어 건강식 반찬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재료는 지역농산물을 이용하되 시간이 있을 때는 어르신들이 직접 농촌에서 재배를 한다고 한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는 어린이 고객들을 위해 돈가스, 카레, 짜장 등 농촌에서 나는 나물반찬과 함께 퓨전음식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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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전주시 중앙동에 있는 ‘친정엄마 반찬가게’의 모습. |
어르신들의 장점 100% 살린 곳
할머니들이 반찬가게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금암노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로 점심과 저녁을 만들면서부터다. 여름에는 독거노인들의 도시락 반찬을, 겨울에는 김장김치를 만들었다.
손맛이 좋은 할머니들의 음식을 맛본 젊은 자원봉사자들과 주위 사람들은 할머니들에게 개인적으로 반찬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전주효자시니어클럽이 할머니들과 함께 ‘친정엄마 반찬 가게’를 창업했다.
김택상 사회복지사는 “평생 집에서 살림하며 익힌 어르신들의 음식솜씨는 자원봉사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며 “어르신들의 장점을 살려 일자리 창출사업과 연관해 생각하다 반찬가게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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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미료 대신 정성을 듬뿍 담은 ‘손맛’으로 고객을 사로잡는 할머니표 반찬가게. 막 볶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볶음을 선보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
담백한 맛, 한번 맛보면 단골고객으로 이어져
이곳에선 주로 배달판매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 동안 먹을 밑반찬 5가지와 국을 배달한다. 매주 다른 반찬과 국을 제공하는데 한 달 가격은 7만원이다. 매장에서도 반찬을 판매하는데, 주로 동네 주민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직접 담근 식혜와 수정과도 파는데, 500㎖에 1000원이라고 한다.
김치부터 반찬서비스까지 매달 이용하는 고객 이모씨(50·여)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외식을 자주 하는데, 가족 모두 집에서 만든 밥을 그리워한다”며 “친정엄마 반찬가게는 엄마가 만들어준 것처럼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 김모씨(43·여)는 “다른 반찬가게는 조미료 맛이 강해 몇 번 먹으면 물리지만 친정엄마 반찬가게는 조미료 없이도 담백한 맛을 내 자주 이용한다”며 “맛을 따라하려고 하지만 그 맛이 안 나오는데, 이게 바로 손맛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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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엄마 반찬가게’를 찾는 고객들은 담백한 맛과 저렴한 가격에 놀란다고 한다. |
“평생 첫 직장, 일하는 것만으로 큰 기쁨”
이곳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은 주부 경력만 50년, 자신만의 직장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4시간씩 일하고 받는 돈은 43만원. 친정엄마 반찬가게가 고객들에게 엄마의 손맛을 선물해줬다면 어르신들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기쁨을 선물했다.
이순례 어르신(70·여)은 “평생 집에만 있다가 이렇게 비슷한 또래와 함께 일을 하게 돼 너무 재미있다”며 “내가 젤 자신 있는 게 음식 솜씨인데 이곳에 나와 실력발휘도 하고 용돈도 벌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기남 어르신(68·여)은 “이 나이가 돼도 나 같은 사람이 쓸모가 있다는 걸 알게 돼 너무 좋다”며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맛있다’거나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보람도 느끼고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김택상 사회복지사는 “친정엄마 반찬가게는 어르신들의 장점을 살린 곳으로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고객만족도 높다”며 “반찬가게의 수익금으로 프랜차이즈 매장을 확대해 어르신들 일자리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에어컨도 없는 친정엄마 반찬가게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앞으로 ‘친정엄마 반찬가게’가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 성공모델로 성장해 전국 곳곳에 어르신 일자리 창출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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