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버 바리스타 꿈꾸는 ‘젊은 황혼’ | news | 2010-11-02 |
ㆍ대구 북구 시니어 클럽이 개점한 ‘카페 나우’
ㆍ직원 모두 60세이상 “커피향에 푹 빠졌어요”
ㆍ시중보다 커피 값 저렴 젊은층도 많이 찾아
“나이가 들어서도 일거리가 있어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대구 지하철 2호선 문양역 3층에 자리잡은 ‘카페 나우’. 이곳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다. 커피를 뽑고 서빙하는 직원들이 모두 귀밑머리가 새거나, 이마가 훤하게 드러난 노인들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검정색 나비넥타이를 맨 최무용씨(62)는 1일 “분쇄기로 원두를 갈아낼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직접 만든 카페라테를 한 잔 내밀었다. 실버 바리스타(Silver varista·노인 커피전문가)로 새 삶을 찾은 그는 요즘 커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
| 실버 바리스타로 새로운 인생 2막을 꿈꾸는 노인들이 1일 원두분쇄기에서 원두를 갈아내고 있다. | 박태우 기자 |
◇ 커피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황혼 = 카페 나우는 60대 이상 노인 12명(남 4명, 여 8명)이 꾸려나가고 있다. 대구 북구 시니어클럽의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에 도전해 일자리를 얻었다. 나이도 60~68세다. 경력도 대기업 간부, 공무원, 공기업 이사, 자영업자, 주부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카페 나우를 일류 커피숍으로 만들어보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들은 북구시니어 클럽 후원으로 지난 7월부터 2개월간 커피이론과 실습교육을 받았다. 커피전문 강사로부터 커피 종류와 원두 고르기, 제조 과정, 서빙 방법 등을 두루 익혔다. 지난 9월 초 마침내 꿈에 그리던 일터를 찾았다. 북구 시니어클럽이 자체 사업으로 커피점을 열고 이들을 취업시킨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커피 제조가 만만치 않았다. 의욕은 앞섰으나 손과 머리가 따로 움직였다. 메뉴에 따라 다른 다양한 원료를 숙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조리 과정을 까먹거나 순서를 뒤바꾸어 엉뚱한 맛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실수를 교훈삼아 반복을 거듭하며 시행착오를 줄여 나갔다. 간간이 커피전문 강사를 초빙해 실전 지도를 받으며 내공을 쌓아나갔다. 지금도 주 1회 모여 제조비법을 공유하고 커피 전문잡지를 돌려보며 커피 트렌드를 익힌다. 이들 중 일부는 이곳에서 실전 감각을 쌓아 별도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다.
신정균씨(62)는 “나이든 사람끼리 서로 격려하며 일하니 재미도 있고 솜씨도 늘어나는 것 같다. 품질로 커피 마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면서 “고객들로부터 ‘잘 마셨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들으면 온몸에서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젠 젊은층도 즐겨찾아 = 북구 시니어클럽은 커피점 장소를 고민하다 지하철 문양역을 택했다. 문양역이 상대적으로 노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점을 고려했다.
초기 손님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소문을 타고 고객층이 확대되고 있다. 인근 마천산 등산객들과 대학생 등 젊은층도 적잖게 찾아들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배치, 관상수 등도 깔끔하게 정돈됐고 내부 동선과 인테리어도 젊은 세대를 배려했다.
지난 9월까지 젊은 고객층은 전체의 1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0%로 늘어났다. 개점 이후 수입도 꾸준히 늘어나 요즘은 하루 평균 15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린다.
카페 나우를 찾으면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카푸치노 등 10여가지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종류에 따라 2000~2800원선으로 다른 커피전문점에 비해 30~40% 싸다. 60세 이상은 20% 추가 할인해 준다.
실버 바리스타들은 2개 조로 나뉘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한다. 하루 5시간씩 근무하는 셈이다. 성실과 근면으로 무장한 이들은 품질 못지않게 친절과 위생관념도 철저하다. 어느 고객이라도 내 가족처럼 친절하고 정성스레 맞이하는 등 서비스도 뒤지지 않는다.
손님 조강진씨는(24)는 “노인들이 이렇게 맛과 향이 뛰어난 커피를 빚어내는 게 신기하다”면서 “나이도 잊어버리고 깍듯이 손님을 맞이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고 말했다.
전직 공기업 간부 출신인 김상진씨(63)는 “동료 직원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여러 계층의 손님을 접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젊어지는 것 같다”면서 “커피를 접하고 나서는 나이를 잊고 지낸다”며 연방 너털웃음을 지었다.
경향신문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