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은 고단해도… 연극선 우리도 주인공" | news | 2010-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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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중랑구청 2층 대회의실에 모인 신내12단지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연극에 쓸 인형을 들고 대사와 표정을 연습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
중랑구 임대아파트 주민들… 직접 쓴 대본으로 애환 달래
지난달 27일 오후 7시쯤 서울 중랑구청 2층 대회의실에서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상봉1동 신내12단지 영구임대아파트 주민 8명이 연극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은복(53)씨가 "선생님! 이게 교육입니까!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가 반장 하면 안 되는 법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요?"라고 대사를 읽자 연기를 가르치던 고홍진(26)씨는 "어머님. 더 크고 또박또박 발음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연극 제목은 '연극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청소부, 간병인, 식당 종업원, 희망 근로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민들이 각자 자기 직업대로 역할을 맡았다.
이곳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연극 활동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고, 극단 '어우름' 소속 연기자 세 명이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평일 오후 세 시간씩 주민들이 직접 쓴 대본을 갖고 연습한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친 뒤여서 모두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웃음과 울음, 분노와 기쁨을 표현하는 연기에 몰두하는 눈빛은 빛났다. 오는 27일 있을 공연을 앞두고 주민들은 저마다 자기 배역을 소화하느라 열중하고 있었다.
조선족 출신인 주영숙(40)씨도 연극에 나오는 인형극, 노래를 배우며 대사를 외우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연기 도중 "중국에 있는 우리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날씨도 추운데 어떻게 지내는지…. 거긴 더 추울 텐데"라는 독백 연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1994년 결혼 후 한국에 들어온 주씨는 2003년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식당일을 하며 아이 둘을 키웠다. 그는 "어눌한 말투와 조선족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며 "자신감을 찾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싶어 연극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연극 연습을 하던 김미숙(57)씨는 중간 중간 오른쪽 팔꿈치를 주물렀다. 30여년 전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던 남편과 헤어진 김씨는 봉제공장, 식당, 청소 등의 일을 하며 자녀를 모두 키워냈다. 지금은 팔꿈치 연골이 닳아서 힘든 일을 하지 못한다. "애들도 출가하고 집에 혼자 있으니까 우울증도 생기더군요. 난생처음 취미생활이라는 걸 하면서 지난 세월의 아픔을 잊고 삽니다."
송정희(53)씨는 39살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청소부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는 "취미활동이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고단한 삶이었다"면서 "연극을 하면 내 삶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고 웃었다.
이곳에서 연극하는 주민들은 남편과 사별하거나 일찍 이혼하고 세상 풍파에 찌들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주민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던 우상백(28)씨는 "연극을 하면서 주민들 스스로 '나도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연극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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