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국민 성금으로 한국행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112병동 2호실. 29일 오후 병실에는 몽골에서 온 어린이 환자 서드커(3)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옆에서는 서드커의 누나 아료카(12)가 동생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겉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를 게 없지만 서드커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다. 그는 백혈병을 앓고 있다.

서드커의 주치의인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유경하 교수는 "항암 치료를 해 안정을 찾긴 했지만, 백혈병 치료에 필요한 세포 이식을 하루빨리 받지 않으면 아이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서드커는 지난해 12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지난 2월 "더 이상 치료해도 소용없다"고 했다. 의사는 "몽골에선 살릴 수 없지만, 의술이 발달한 한국에 가면 희망이 있다. 하지만 치료비가 6000만원 정도는 들 것"이라고 했다.

이 돈은 작은 식당 요리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15년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가족들은 인터넷에 '서드커를 살려달라'는 글을 수없이 올리고, 몽골의 각종 구호 단체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다. 서드커의 딱한 사연은 몽골의 텔레비전 방송에 5번, 전국 일간지에 2번이나 소개됐다.

몽골 국민 사이에 '어린이 백혈병 환자 서드커 돕기' 모금 운동이 일어나 두 달 만에 2000만투그릭(약 2000만원)이 모였다. 몽골의 사회·연예인 단체에서도 4000만원을 더 모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서드커의 가족은 지난 4월 2000만원을 들고 한국 땅을 밟았다. 서드커가 매일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병원을 찾아간 서드커의 가족은 다시 한 번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났다.

병원에선 서드커의 병 치료에 수술비 1억2000만원은 필요하다고 했다. 예상했던 치료비의 2배였다. 치료비 6000만원은 건강보험료를 꾸준히 낸 한국 사람들 얘기였다. 후원금을 더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몽골 단체에서도 연락이 끊겨 버렸다.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 두 곳을 찾아갔지만, 수술비가 턱없이 모자란 서드커를 받아주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이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서드커는 22일간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친척집 작은 방에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이대목동병원 기독교 의사 모임에 서드커 이야기가 전해졌고, 이들은 서드커를 우선 입원부터 시켰다.

엄청난 수술비를 병원에서 모두 감당하기는 불가능한 상황. 그러나 병원 측은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항암제 치료를 시작했다. 엄마 난디아(32)씨는 "한국 땅까지 찾아와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내 장기(臟器)를 팔아서라도 서드커를 살리겠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서드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국의 백혈병 환자 가족 모임인 '백혈병환우회'가 아이 돕기에 나섰다. 환우회는 최근 전국 교회 100군데에 공문으로 후원 요청을 보냈고, 각종 구호 단체를 찾아다니며 몽골 아이의 처지를 알렸다. 또 전국 환우회원 8000명과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 3만명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이려고 계획하고 있다. 환우회 대표 안기종씨는 "우리 경제 사정도 넉넉지는 않지만, 몽골 국민의 염원까지 달고 온 이 아이의 생명이 너무나 귀중하다"고 말했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백혈병 치료차 와서 적절한 병원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몽골의 3살박이 서드커가 목동이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건강을 많이 회복한 가운데 백혈병 환자 가족 모임인 ‘백혈병 환우회’가 병원과 함께 서드커 돕기에 나섰다.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