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 빈자리 사랑으로 채워준 키다리 경찰관 | news | 2012-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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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예양이 김동호 경사에게 보낸 감사편지. |
엄마, 정신질환으로 6년째 입원… 아빠마저 병으로 세상 떠나
순찰 돌다 안타까운 사연 듣고 주간 근무 때마다 자매 찾아가
"아이들이 쓴 감사편지에 감동… 도움 줄 분 많이 나타났으면"
지난 29일 오후 2시. 충남 서산 지곡면 환성리에 사는 김지예(8)·지순(7)양은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섰다. 이날 아침 자매는 지병으로 숨진 아버지(김경희·59) 발인을 막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언니 지예양은 "아빠가 아직 집에 계실 것 같다. (돌아가셨는지) 잘 모르겠다. 병원에 계신 엄마라도 빨리 나아서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동생을 끌어안았다. 이날 울먹이는 자매 옆에서 어깨를 두드려준 사람은 어머니도, 친척도 아닌 서산 대산지구대에 근무하는 김동호(45) 경사였다.
김양 자매의 어머니는 난치성 정신질환으로 6년째 입원 중이고, 아버지마저 석 달 전 신장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자매만 홀로 집에 남겨졌다. 자매 근처에는 가끔씩 집에 들러 밥을 챙겨주는 5촌 당숙모 1명만 있을 뿐이었다. 김 경사는 지난 8일 순찰을 돌던 중 환성리 이장으로부터 두 자매의 사연을 들었다. 이장은 "어린 애들만 집에서 두 달째 살고 있어서 도둑이 들거나 나쁜 사람이 올까 봐 걱정된다"며 김 경사에게 집에 들러봐 달라고 부탁했다.
김 경사가 처음 집을 찾았을 때 자매는 붉은 고무 대야를 마당에 두고 서로 물을 부어주며 머리를 감던 중이었다. 김 경사가 다가가자 언니 지예양이 달려나와 "무슨 일이에요. 경찰 아저씨? 혹시 아빠에게 나쁜 일 생겼어요?"라고 물었다. 김 경사는 "남루한 모습의 자매 둘만 집에 있는 걸 보니 도저히 그냥 돌아서기 어려웠다"며 "나라도 아이들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 경사는 주간 근무 때는 하루에 꼭 한 번 자매 집을 들렀다. 자매는 주로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김 경사는 낯선 그를 경계하고 어려워하는 자매에게 "그림 정말 예쁘게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며 다가갔다. 가끔 쌀과 조기·동태 같은 반찬거리를 준비해 직접 밥을 해 먹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1·2학년인 자매 방학숙제를 도와주고, 공룡 그림책과 위인전도 사줬다. 2학기 개학에 맞춰 공책도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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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충남 서산 지곡면 환성리의 김지예(왼쪽)·지순양 집에서 김동호 경사가 아버지 발인식을 마치고 돌아온 자매를 위로하고 있다. 김 경사는 지난 8일 이장으로부터 부모가 아픈 자매의 사연을 들은 뒤 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
자매는 김 경사를 '삼촌 아저씨'라 부른다. 야간 근무라 낮에 못 가면 어김없이 전화해 "언제 와?" 하고 묻는다. 지난 27일 새벽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듣고 언니 지예양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어머니도, 친척도 아닌 김 경사였다.
자매는 지난 16일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정성스레 쓴 편지와 과자를 김 경사에게 '깜짝 선물'로 줬다.
"경찰관 아저씨 저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과자 드시고 힘내세요. 사랑해요 경찰관 아저씨.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지예 올림."
김 경사는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짧은 내용이지만, 제 고교생 딸과 초등생 아들로부터 받은 어버이날 선물보다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이 편지 내용과 사연을 동네 이장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김 경사의 선행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게 됐다.
김 경사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라며 "아이들 사연이 알려져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다"고 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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