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겨워도 현실 받아들이니 행복 보였죠" | news | 2012-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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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준(오른쪽) 김영희 부부. "장애와 치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선입견이 문제인거 같아요. 그러니 자꾸 그 가족은 그걸 숨기고 살려고 하죠. 그래서 더 힘든 거고요. 사회적 편견이 먼저 없어져야 합니다." |
지적장애 딸 돌보며 치매 친정엄마 극진한 봉양
주부 김영희씨의 효심 '치매극복의 날' 표창
"한때 이민갈 생각 수없이… 자상한 남편·시어머니 덕"
"온통 도망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부 김영희(37)씨의 둘째 딸은 올해 열 살이 됐지만 대소변을 못 가린다. 태어날 때 뇌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안되면서 장애(지적장애 1급)를 얻었다. 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말로만 듣던 장애인을 처음으로 접한 게 제가 낳은 아이였어요. 주변 시선이 얼마나 따갑던지 이민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부족함 없이 평범하게 자란 남편 정의준(40)씨도 장애 딸을 한국서 키울 자신이 없었다. "다니던 외국계 회사 본사에도 문을 두드렸죠. 영어 면접은 얼마나 보러 다녔는지 모릅니다. 그 덕택에 캐나다 영주권까지 받았어요."
하지만 부부는 이민을 가지 않았다. "선진국으로 이민 가면 둘째 딸의 삶은 나아질지 몰라도 나머지 식구들은요?"(정씨) 예상되는 불편과 편익을 한데 적고 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그래서 결정한 게 뭔지 아세요?'우리, 여기서 캐나다에 이민 온 것처럼 살자' 였어요."(김씨)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더 여유롭게 살고, 소소한 것에 기쁨 느끼며 살기….
정작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아픈 딸 키우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위안 받을 요량으로 찾는 김씨의 친정어머니(70)였다. "몇 년 전의 교통사고 탓인지 고집이 세지고 당신 할 말만 하시더라고요. 친정에 가면 더 피곤해졌죠." 아니다 다를까 그 뒤로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장사꾼의 말에 꾀여 필요이상의 건강보조식품 구입에 가산을 탕진했다.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치매(알츠하이머) 초기라는 거에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치매 환자를 처음으로 직접 봤는데, 그게 우리 엄마라니!"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비닐 봉지가 냉장고에 쌓여 문이 닫히지 않았다. 증세는 점점 심해져 갔다. '다 놓고 도망가고 싶다.'이 생각이 다시 든 것도 그 때쯤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자상한 남편, 같이 사는 시어머니(62)가 돋으려는 그 날개를 싹 잘랐다. "아픈 딸과 친정어머니를 같이 보살피자면 수색동에 사는 어머니를 시댁(석촌동) 근처로 모실 수밖에 없어 주변의 집을 알아 보고 있었죠. 그 때 시어머니가 우리 아래 집으로 알아봐주신 거 있죠?"이렇게 해서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게 3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김씨의 친정어머니는 증세는 더욱 악화했다.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 빈 페트병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어떨 땐 하늘로 먼저 간 남편이 살아났다며 한밤에 묘지로 향하기도 했다. 집을 나간 뒤 못 돌아오는 바람에 온 식구가 길거리로 나선 일은 부지기수고, 경부고속도로를 순찰하던 경찰에 '적발'돼 집으로 실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지칠 법도 하지만 부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니 힘들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기대치는 낮아지고 그때부터 행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김씨) "병원이고 약국이고 갈 때마다 장모님 손을 꼭 잡아드리는데 너무 좋아하세요. 이렇게 장모님 손 꼭 잡고 다니는 사위 있습니까? '치매'가 제게 가져다 준 삶의 즐거움입니다."(정씨)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현재 국내 치매환자는 2008년(42만명)보다 27% 가량 는 53만명. 인구 100명 당 1명 꼴이다. 복지부는 21일 치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개선과 조기 발견,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제정한 '치매극복의 날' 기념 행사를 갖고 김씨 등 치매유공자를 표창한다.
한국아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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