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첫 시각장애 기수 대회 출전 "한번만이라도… 마음껏 달리고 싶었다" | news | 2012-09-26 |
안마사로 일하며 기수 된 이병하씨… 10㎞ 지구력 승마대회 66명 중 25위
코너마다 방향전환 할 수 있게 재즈·팝·클래식 바꿔틀어… "장애인 올림픽 출전이 꿈"
22일 오후 2시 40분 충북 충주시 남한강변 승마길의 '제11회 국민생활체육회장기 전국지구력승마대회' 현장. 말 66마리와 기수들이 10㎞ 경기를 앞두고 있다. 호각이 울리자 말들이 '따가닥'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말들 가운데, 유독 거리를 유지한 채 함께 달리는 말 두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앞서 달리는 기수는 허리춤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세트테이프를 달고선, 연신 뒤를 돌아보며 "왼쪽으로! 조금 천천히!"라고 외쳤다. 뒤따르는 기수는 시각장애인 이병하(34)씨. 앞선 기수는 병하씨의 소속클럽 원장 김병훈(48)씨다. 김 원장은 테이프 음악소리로 이씨와 거리감을 맞추고, 목소리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했다. 이날 이병하씨는 시각장애인 최초의 승마선수로서 승마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10㎞ 경기는 '말 마라톤'으로 불리는데, 세밀한 기술보다는 말과 호흡을 맞춰 끈기 있게 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실명(失明)하고서는 한 번도 앞으로 달려가는 자유로움을 느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말의 '눈'을 빌려 달려보니 '자유'를 느껴보겠더라고요."
병하씨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아홉 살 때 한쪽 눈을 실명했다. 열네 살 때는 학교 복도에서 뛰던 후배와 부딪혀 나머지 눈마저 잃었다. 사고 당시 피가 터져 나와 복도를 비추던 환한 빛이 그가 본 마지막 세상의 풍경이었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안마사로 취업했고 24살엔 결혼도 했다. 병하씨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했다.
그런 병하씨가 승마를 시작한 것은 3개월 전. 병하씨는 경기도 양주에서 체험승마 기회를 얻어 처음 말을 타보았다. 누군가 이끌어 주긴 했지만, 부딪힐 걱정 없이 앞으로 내달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계속 말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거주지인 광주 근처 10여개 승마클럽에 문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일반인들도 낙마사고가 잦은데 시각장애인은 어떻겠냐"는 이유에서였다. 낙담한 이씨를 받아준 유일한 사람이 '광주첨단승마클럽'의 김병훈 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병하씨의 간절한 표정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승마는 말의 '눈'에 30% 정도 의존하고, 나머지는 각고의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날부터 병하씨는 매일 말을 탔다. 원장은 병하씨에게 자신의 열한 살짜리 애마 '필드'를 내줬다. 65×30m 의 사각 경기장 곳곳에 재즈·팝·클래식 등 각기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세트테이프가 설치됐다. '음악 소리를 통해 위치를 구분하자'는 병하씨의 제안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서 코스를 익힌 뒤 그 다음은 말을 타고 익숙해진 음악소리로 '감'을 잡아서 코스를 달렸다.
김 원장의 지도를 받은 병하씨는 일취월장으로 늘었다. 일반인들이 10일 걸리는 단계를 5일 안에 해내는 식이었다. 9월 22일, 전국지구력승마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주위에선 병하씨에게 출전을 권유했다. 사단법인 생활체육승마연합회에 시각장애인 최초로 선수등록까지 한 병하씨는 대회 2주 전부터 훈련에 매진했다. 매일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안마를 하느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바로 승마장으로 향했다. 훈련 시간을 하루 다섯 시간으로 늘렸다.
이날 오후 3시 11분. 그는 출발한 지 28분 4초 만에 도착했다. 성적은 이날 참가한 66명 중 25위. 병하씨는 "10㎞를 달릴 수 있던 힘은 신뢰"라며 "말과 끌어주는 사람 모두를 믿으니 눈이 보이지 않아도 달릴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병하씨는 말에서 내려 필드의 목을 한동안 끌어안았다.
"2016년에 브라질 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1호 금메달리스트가 되겠어요." 이씨의 다음 꿈이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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