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이웃이 만든 마을 신문, 가난한 동네를 바꾸다 | news | 2012-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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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전 대전 동구 판암2동 아파트 단지에서 마을신문 ‘판암골 소식’의 주민기자단이 동네 주민들에게 신문을 나눠주고 있다. 마을에 6년째 살며 주민기자로 활동하는 김영철(사진 가운데)씨 등 주민기자 3명은 “이번 호도 즐겁게 읽으세요”라며 신문을 건넸고 주민들은 “이제 나왔군요. 얼마나 기다렸는데”라며 화답했다. 지난 2005년 처음 발행해 달마다 제작된 신문은 어느덧 73호가 됐다. /신현종 기자 |
대전 '판암골 소식'이 만든 기적
주민 20명이 기자·편집자… 7년전 "도서관 없다" 첫 보도, 4년만에 최신식 도서관 건립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복지관·비좁은 경사로… 신문에 실린 후 속속 해결
"건의사항 인터넷 올려봤지만 마을을 실제로 바꾸는건 신문이 최고더라"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2동엔 5000여 가구, 주민 1만4000여명이 살고 있다. 1980년 대청댐 건설로 수몰민이 이주해오고 1993년엔 임대 아파트도 들어섰다.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자 "못사는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온다"며 기존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고, 지금은 주민의 3분의 1이 기초생활수급자인 '가난한 동네'가 됐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다른 마을이 부러워할 만한 지상 3층, 107.46㎡ 규모의 최신식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3층짜리 건물이지만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도 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해 탁구장, 당구장 시설을 갖춘 복지관도 있다.
이런 게 가능했던 건 마을 신문 '판암골 소식' 덕분이다. 발행 부수 5000부, 매달 첫째 주에 발행되는 4면짜리 신문 '판암골 소식'은 2005년부터 7년째 나오고 있다. 발행인은 '마을신문주민기자단'. 마을주민들이 신문기자와 편집자다. 동네 상가, 아파트, 주민센터 등에 공짜로 배포된다. 12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온 오정숙(여·63)씨는 "예전에는 여기 산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을 정도로 가난했던 동네였지만, 지금은 마을신문 덕분에 마을이 하나둘 변해가는 모습에 신이 난다"고 말했다.
발행 비용은 한 달에 50만원 안팎. 복지관 측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충당하지만, 모자랄 때는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내는 광고료로 보충한다.
'판암골 소식'은 이동연(42) 목사와 권태용(37) 복지사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권씨는 "동네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일간지에서는 다뤄지지 않으니, 마을 신문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소식을 알리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 목사와 복지관에 교육을 받으러 온 주부 등 총 8명이 창간 기자가 됐다. 한 번도 신문기사를 써보지 않은 이들은 지역 신문기자를 초청해 교육을 받았고, 신문사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창간호가 발행됐다. 마을신문은 '우리 동네 이웃 이야기' '동네소식' '알뜰정보' 등 철저하게 마을 이야기로 꾸며졌다. 창간호의 헤드라인은 '왜 우리 동네에는 도서관이 없나'였다.
"옆 동네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 아이들이 그 도서관을 가면 그 동네 주민들이 싫어했어요."
이 목사가 처음 기사를 쓰고서, 4년 동안 기자들은 지면에 다른 동네의 도서관을 소개했고, 2006년에는 마을 주민들의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마을 주민 2587명이 동참했다. 동네 초등학생들이 '시장님'에게 도서관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글도 소개하며 꾸준히 도서관 건립운동을 전개했다. 2009년 3월에는 학생 기자인 박상기(16)군이 구청장을 직접 만나 주민들의 의견을 전하고 구청장을 인터뷰했다. 이런 노력이 전해져 시장으로부터 도서관 건립을 약속받고, 2010년 4월 지상 3층, 열람석 87석 규모의 마을 도서관이 생겼다.
4년간의 노력이 주민들에게 알려지자 주민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13년째 동네에 살고 있는 박종열(63)씨는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 '판암골 소식에서 쓰면 다 된다'는 인식이 퍼져 신문이 나온 지 3일이면 동이 난다"고 말했다. 기자 수도 20명으로 늘어났다.
자동차 사고로 20년 전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장현(38)씨는 마을 곳곳을 휠체어로 누비며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쓴다.
김씨는 2010년 2월호에 '우체국 입구 경사로가 좁아 휠체어가 다닐 수 없다'는 첫 기사를 썼다. 신문을 본 우체국은 곧바로 경사로 폭을 넓히고 자동문을 설치했다. 이후 김씨는 '415동 앞 버스정류장에 비 가림 시설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써서, 결국 설치되도록 했다. 최근에는 판암2동 근린공원 입구의 경사가 급해 장애인들이 공원을 이용할 수 없다는 기사를 썼다. 신문을 본 공원 측에서 김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완만한 경사의 입구를 이달 초에 만들었다. "내가 크고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이웃들이 기사 써달라는 부탁도 해주시고, '기사 잘 봤다'고 얘기해 주실 때 너무 감사해요." 한국인 남편을 따라 1997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가사이 유키코(42)씨는 '은영이(딸) 엄마와 함께 배우는 생활일본어' 꼭지를 연재하고 있다.
반상회도 SNS(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로 하는 시대에 종이 신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마을의 건의사항을 구청 민원게시판 등 인터넷에도 올려보고 반상회에도 전달해봤지만, 결국 마을을 실제로 바꾸는 건 신문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이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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