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웃의 구멍난 담장, 레고 조각으로 채워요 | news | 2013-03-26 |
독일발 ‘디스패치워크’ 프로젝트 인천 상륙…우각로 문화마을에 활기 불어넣어
80년대 뉴욕시는 연간 수십만 건에 달하는 중범죄에 도시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치안은 형편없었고 여행객들은 두려움에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지하철 흉악범죄도 난무했다. 이에 뉴욕시 교통국은 6,000여 대의 차량에 있는 모든 낙서를 지우는 작업을 시작한다.
믿기 힘들지만 낙서를 지우기 시작하면서 뉴욕시 지하철의 중범죄 사건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두면, 그 지점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독일의 젊은 설치 미술가인 얀 포르만은 ‘죽어가는 문명의 상처를 20세기의 반짝이는 플라스틱 문명으로 보수한다’라는 말과 함께 전 세계를 돌며 허물어진 건물의 틈새를 레고 조각으로 채우는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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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되고 있는 디스패치워크. 낡은 도시의 건물 곳곳에 알록달록한 레고 조각을 끼워넣어 활기찬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다.(사진=디스패치워크 홈페이지) |
그는 칙칙하고 오래돼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낡은 도시의 건물 곳곳에 알록달록한 레고 조각을 끼워넣는 ‘작지만 실천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을 통해 좀더 활기차고 재미있게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디스패치워크’는 80년대 뉴욕시의 사례가 보여주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맞닿아 있다.
현재 전 세계 30여 개의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디스패치워크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지난 1월, 인천 우각로 문화마을에서는 벌어진 외벽 틈새 곳곳을 알록달록한 레고로 채우는 한국판 디스패치워크가 진행됐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마을은 이전보다 더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로 변했다.
실제로 우각로 마을은 1900년대 스타일의 건물과 오래된 골목길 등 근대 문화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으로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 빈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연 발생하는 빈집을 하나둘 방치하다보니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주변 환경이 열악해지고, 급기야 마을 자체가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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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각로 문화마을의 전경, 형형색색의 집과 담장들이 어두웠던 마을의 분위기를 밝게 바꿔줬다. |
그러던 중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시행 중인 ‘2012년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도서관, 강당, 마을교실 등의 공동체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빈집에 거주하면서 작업장을 중심으로 주민들과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공유하게 되면서 우각로 마을은 점차 ‘문화마을’로 거듭나게 된다.
마을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밝은 원색의 담장과 벽이었다. 거리나 골목 등은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지만 빨강, 파랑, 초록, 주황 등 곳곳에서 제 빛깔을 내는 아기자기한 집들이 한데 어울린 마을 풍경은 흡사 외국의 어느 작은 마을을 옮겨온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얼마 전 개소식을 마친 ‘행복도서관’의 아기자기한 입구와 간판이 보인다. 마을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찾는 것도 이곳 우각 마을에서는 재미있는 도전이다. 좁은 골목 사이, 발밑의 작은 돌담, 어느 집의 벽면 등 곳곳에서 마을의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려는 예술가들의 노력들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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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에 개소식을 마친 ‘행복도서관’의 외관 |
한편, 이곳에서 진행된 디스패치워크는 생활문화공동체 사업 수행 단체들의 자율적인 신청에 의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각로 문화마을 예술가, 마을 사랑방 어르신, 라온누리 청소년 봉사단 등 다양한 연령층이 소통하며 즐겁게 작업을 수행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회교육팀 최유리 씨는 “처음에 디스패치워크 활동 재료로 준비했던 레고를 보신 몇몇 주민들이 ‘이 조그만 장남감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반신반의 하셨지만, 레고를 하나하나 조립해 낡은 벽면에 채워 넣음으로써 생동감 있게 변해가는 골목길을 보시고는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디스패치워크 활동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소소한 활동일지라도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앞으로도 계속 마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주셔서 매우 뿌듯했다.”며 프로젝트에 애착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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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벽화와 예술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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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주민들과 봉사단 학생들, 예술가들이 함께 디스패치워크를 진행하였다. 왼쪽 사진은 라온누리 봉사단의 김성현 학생이 레고를 채워넣는 모습이다 (사진=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우각로 문화마을에 거주하면서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의 실무자로 함께 참여했던 조영숙 씨는 디스패치워크에 대해 “마치 있던 곳이 없던 곳처럼, 없던 곳은 있던 곳처럼 새로운 공간을 꾸며나가는 작업이라고 느꼈다.”며 “이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주민들간에 신뢰감도 더 높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은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됐으며 각 지역의 특색과 개성을 살려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다. 사람들의 일상이 문화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생활 공감형 문화정책으로 이를 통해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고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취지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회교육팀 최유리 씨는 “문화예술로 마을 단위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을에 있던 갈등을 문화적인 방식으로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의 관계가 형성되고 결속력이 생기는 것”이라며, “생활문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현장에서 단체 활동가들이 지역 주민들을 직접 만나며 발로 뛰고 계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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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패치워크가 진행되기 전(좌)과 후(우)의 모습. 갈라진 틈새가 알록달록한 레고 조각으로 채워져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현장을 찾았던 날 블로그에 소개된 마을의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던 한 방문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곳곳에 채워진 레고의 흔적들을 찾아다녀봤어요. 실제로 와서 보니 뭔가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은 레고 조각들이 모여 마을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줄 수 있다니 놀랍네요.”라며 디스패치워크에 관심을 보였다.
현재 전국 51개 지역에서 단체와 마을 주민이 함께 문화예술 창작 활동에 참여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향한 관심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우리의 생활문화공동체 사업도 하나의 정책이자 프로젝트의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지역 곳곳에 삶의 한 방식으로 따뜻하게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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