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의족 마라토너…항상 꼴찌하지만 내 기록 늘 내가 깨요 | news | 2013-07-05 |
완주시간 '7시간'.
지난 2008년 10월 27일 늦은 오후. 박영길 씨(48)는 맨 꼴찌로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했다. 제한시간 5시간을 넘은 뒤라 행사 진행요원도, 스톱워치를 눌러줄 자원봉사자도 모두 자리를 뜬 뒤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있던 40여 명의 동료 마라토너들이 박씨를 박수갈채로 환영했다. 그의 도전은 정말 값진 것이었다. 그는 버거씨병으로 왼쪽 다리를 잃은 '의족' 마라토너였다.
1991년 가죽점퍼 공장을 운영하던 박씨는 왼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동네 병원을 전전하며 처방을 받았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종합병원을 찾은 박씨는 다리 혈관이 서서히 썩어들어가는 '버거씨병(허혈성 하지괴사질환)'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이었어요. 사양산업이던 가죽점퍼 공장마저 경영이 어렵던 터라 설상가상이었죠."
사업을 접고 1년에 걸쳐 혈관이식수술을 받자 병세는 양호해졌다. 침구기업 이브자리에 취직해 생활도 안정됐다. 그러던 버거씨병은 2000년 갑자기 재발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병원 신세를 졌다.
"살이 썩는 고통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마약에 가까운 진통제로 버텼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의사선생님께 다리를 절단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병의 진행 경로에 따라 새끼발가락부터 시작해 수차례에 걸쳐 무릎 바로 아래까지 절단했다.
그러던 박씨가 힘을 되찾은 계기는 역시 '가족'이었다.
"당시 세 살배기였던 아들이 밖에 나가 놀지도 않고, 집에서 저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평소 친하던 인천 지역 이브자리 지부장 소개로 다시 회사에 입사해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던 중 2007년 어느 날, 박씨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라톤 코치가 연락을 해왔다. 그는 "외국에는 의족으로 42.195㎞를 완주한 마라토너들이 있다"며 박씨에게 마라톤 참가를 권했다.
"처음엔 동네 공원 한 바퀴 도는 데도 2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매일 2시간씩 훈련하며 5㎞, 10㎞로 거리를 늘렸습니다."
피나는 훈련을 거듭한 박씨는 2008년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해 7시간여 만에 결승점을 통과했다.
"의족이다보니 피가 통하지 않아 3~4㎞마다 의족을 벗고 다리를 마사지해줘야 합니다. 한 번 마라톤 완주할 때 10회 이상 의족을 벗었다 착용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셈이죠."
이날 마라톤 완주를 지켜본 고춘홍 이브자리 회장은 사비 700만원을 들여 육상선수들이 사용하는 탄성소재 의족을 직접 선물하기도 했다. 박씨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풀코스 마라톤을 네 차례 완주했다. 최근 기록은 6시간28분. 처음 기록보다 40분 가까이 단축했다.
"제한시간을 넘어 꼴찌로 달리다보니 통행제한이 풀려 달리는 차들을 피해 갓길로 다니는 게 힘듭니다."
최근 2년 동안 마라톤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일 욕심이 생겼다"며 "일단 맡은 일은 누구보다 잘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라톤을 접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음 꿈을 향해 준비 중이다.
"3년 내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지금은 수영과 사이클링을 한창 훈련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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