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없어도 좋은 걸 어쩌죠 컬링의 '우생순' 기대하세요" | news | 2014-01-03 |
"내가 미성이 쟤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 얼마나 믿고 의지해 온 사이인데…."
2일 정오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 국가대표 여자컬링팀 정영섭 감독이 연습을 마친 뒤 문에 기댄 채 툭 이 말을 던졌다. 당사자인 신미성 선수를 돌아보니 저만치 떨어져서 열심히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에이, 신 선수는 못 들었겠는데요"하며 너스레를 떨자 신 선수 입가에 미소가 걸린 게 눈에 잡힌다. 아, 들었는데도 못 들은 척 한거구나. 그냥 '툭' 한마디 던지면 '척' 하고 알아듣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신기하다.
2014년 새해가 갑오년 청마의 해보다는 소치 동계올림픽의 해인 사람들이 있다. 훈련장에서는 온갖 인상을 쓰며 혼내고 혼나지만 밖에서는 가족같이 뜨겁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대표 여자컬링팀의 신미성ㆍ김지선ㆍ김은지ㆍ엄민지ㆍ이슬비 선수와 정영섭 감독, 최민석 코치가 그들이다.
종종 스포츠를 주제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설마 저럴 리가'라고 반신반의할 때가 있다.
그런데 여기 여자컬링팀 얘기가 딱 그렇다. "진짜 저런 일이 생기는구나"하는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정 감독과 신 선수가 툭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사이가 된 건 비인기 종목 컬링을 10여 년 붙잡고 함께해 온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람들이 저한테 '넌 컬링계의 어머니도 아니고 할머니야'라고 해요"라며 유쾌하게 웃는 신 선수는 1998년 컬링을 시작했을 때 지붕도 없고 빙질은 형편없던 어린이대공원 빙상장에서 연습하던 때를 떠올린다. 세계대회에 나가면 캐나다 선수들이 한 번 쓰고 버린 장비를 주워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컬링이 너무 재미있어서 고생인 줄도 몰랐다.
정 감독은 한국 여자컬링이 세계 정상급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온갖 열정을 쏟아부었다. 경기도청 컬링팀을 창설해 국가대표로 만들었고 사비도 아낌없이 털어넣었다. 한 번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면 비행기값만 800만원이 나왔는데 이걸 전부 책임졌다.
그는 "컬링에 너무 돈을 쓰니까 와이프가 이혼하자는 말까지 할 정도니 나도 내가 미쳤지 싶다"며 허허 웃는다.
이슬비 선수는 소속팀이 해체돼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던 와중 정 감독의 권유를 받아 다시 컬링을 시작했다. 김은지 선수는 대학을 중퇴하고 경기도청팀 선수가 됐다. 대학 재학 중 실업팀 선수로 활동할 수 없었던 규정 때문에 미련 없이 대학을 포기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소치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됐다. 2012년 캐나다 세계선수권 4강에 들어 턱걸이로 소치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귀국 후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경북도청팀에 패배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분함은 독기로 변했다. 김지선 선수는 "결승 직전 또 경북도청팀에 패한 뒤 선수들이 춘천 소양호에서 큰 소리로 울어대며 목청껏 서로 이름을 불렀다"며 "그렇게 소리치고 울었더니 마음을 비우고 결승전에 임해서 이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힘든 시간은 차돌 같은 팀워크를 만들었다. 돌도 안 된 딸아이를 둔 신미성 선수, 신혼의 단꿈을 박차고 나온 김지선 선수 모두 동계 올림픽 승리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던졌다. 직접 만나 본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올림픽 메달의 후광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분투하는 그녀들 모습에 저절로 진심 어린 응원이 나왔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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