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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 산골마을. 남이섬과 인접한 왕복 2차로 북한강변길에서 산 속으로 700여m를 올라가자 가평 연극마을에 마련된 ‘어설픈 연극제’ 행사장이 나온다. 무대에선 전국노래자랑을 패러디한 ‘진국노래자랑’이 열렸다. 50대 후반의 참가자가 검정색 배트맨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나타났다. ‘무조건’ 가요 반주가 흘러나왔지만 박자를 놓친 듯 머뭇거리던 그는 심사위원이 “땡” 하고 불합격 종을 치면서 이내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 남성은 대뜸 무대에 엎드린 채 팔굽혀 펴기를 했고, 백발 노인으로 분장한 사회자는 그의 등에 올라앉아 익살스런 몸짓으로 장난을 쳤다. 100여 명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연 후 가면을 벗고 김성기 가평군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또다시 손뼉을 치며 반겼다.
 

　‘가평을 무대로, 주민이 배우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연극제는 주민과 연극인이 한 데 어우러진 ‘아마추어+전문가’의 보기 드문 합작품이다. 서울 방배동에서 가족과 온 이명호(48·회사원)씨는 “주민들이 만든 연극제라고 해서 초등생 자녀와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보러 왔는데 꾸밈없는 모습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지난해 11월부터 연극마을을 조성 중이다. 이번에 처음 주민들 손으로 18~19일 이틀간 ‘1/10 어설픈 연극제’를 열었다. 서툴지만 정겨운 생활 연극을 산골 가설무대에서 선보인 것이다. 18편의 연극과 풍물공연에 600여 명의 관객이 찾아 첫 행사인데도 객석이 모두 차는 성과를 올렸다. 주민 100여 명은 출연 배우로, 몸빼 바지를 입은 상인으로, 가면을 쓴 주차요원으로, 탈을 쓴 행사 진행요원으로 상황별 역할을 맡아 연극제에 참여했다. 또 도토리묵과 빈대떡·잔치국수 등 유기농 먹거리로 손님들을 맞았다.

　한적하기만 한 산골마을이 연극마을로 변신하는 중심에는 연극인이자 동네 주민인 이원승(54)씨가 있었다. 그는 2011년 4월 황토 전원주택을 지어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 공기 맑고 인심 좋은 산골에서 어린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인기 개그맨이었던 그는 15년 전 사업에 실패하며 빚이 늘자 죽을 결심까지 했다가 나폴리식 화덕 피자 사업이 성공하면서 극적으로 재기했다. 그는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며 “삶의 방향이 나만 생각하던 데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제2의 고향인 이화리에 기여할 방안을 고민하던 중 지인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산골마을에서 세계적인 연극 관광도시로 변모한 일본 도야마(富山)현 도가(利賀)와 같은 연극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함께 도가로 벤치마킹을 다녀온 김 군수와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도 힘을 보태기로 약속했다. 지난해 11월엔 한국연기예술학회와 협약을 맺고 연극마을 조성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번 연극제 명칭도 ‘주민이 주인공 되는’ 연극마을 조성을 위한 첫 행사이자 아직은 목표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의미에서 ‘1/10 어설픈 연극제’로 정했다.

　 이씨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관내 20개 초·중·고교에 연극반을 만들고 동료 연극인들과 주부와 학생들에게 연극도 가르치고 있다. 이성규(67) 이화리 이장은 “어설픈 산골마을 연극에 관광객이 몰려드는 게 신기할 뿐”이라며 “주민들도 만족해하고 마을도 발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