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콜 당첨되셨습니다. 호출지-청주시 용암동 ○○빌라 앞.”

　지난 19일 오전 8시 충북 청주시 시설관리공단 앞. 해피콜 차량 운전대를 잡은 박상길(59)씨의 내비게이션에 호출이 떨어졌다. “이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어 청주혜원학교에 다니죠. 성격도 밝고 인사성도 좋아요.”

　20분가량 이곳저곳을 헤집어 간 막다른 골목에 초등학교 4학년생 윤모(11)군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윤군이 익숙한 듯 인사를 하며 500원짜리 4개를 박씨에게 건넸다.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고 하더라고요. 5㎞ 남짓 되는 등굣길이지만 꼼꼼히 챙겨줘야 해요.” 박씨는 윤군의 허리에 안전벨트를 단단히 묶었다. 이젠 윤군의 표정만 보고도 몸이 아픈지, 기분이 좋은지 대부분 맞춘다고 했다.

　해피콜은 충북 청주시가 2009년부터 운영 중인 노약자·장애인 전용 콜택시다. 청주시엔 총 38대가 있다. 박씨도 해피콜 운전기사 중 한 명이다. 기본요금은 10㎞에 2000원. 그 이상은 1㎞당 300원이 추가된다. 사전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 이날 박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12번의 콜을 받았다.

　박씨를 비롯한 해피콜 기사는 청주에 있는 장애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1주일에 한 번꼴로 만나는 이웃도 있고 거의 매일 만나는 경우도 있다. 박씨는 “처음에는 목적지를 물어도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 헤매곤 했는데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 딱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된 손자와 단 둘이 살며 손자의 학교 갈 차비 2720원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폐지를 줍는 봉명동의 한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 콜이 없어 전화했더니 2000원밖에 못 벌어 연락하지 못했다고 해 720원을 할인해주기도 했다.

　박씨가 해피콜 기사를 시작한 건 2010년 10월. 인천에서 건설업을 하다 부도를 맞은 그는 1998년 사촌 형이 있는 청주로 내려와 중장비와 택시 운전을 했다. 2000년부터 지인 소개로 요양원 봉사를 시작했고 이후 매주 아동보호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빛고을 소리’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민요 공연도 하고 있다. 그러다 해피콜과 인연을 맺었다. 박씨는 “사업할 때 큰 돈도 꽤 만져봤지만 지금은 170여만원의 해피콜 기사 월급이 더 값지다”고 말했다.

　오후 1시, 박씨의 차량에 또 “띵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투석 치료를 받는 김모(84·여)씨와 그의 남편이었다. 율량동의 병원에 도착한 박씨는 김씨를 끌어안아 자리에 앉혔다. 김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집 앞까지 와주는 기사님이 최고여. 적적할 때마다 말벗도 해주고. 꼭 아들 같어유”라고 말했다.

　사창동의 아파트에 노부부를 다시 실어다준 박씨가 한마디 했다. “휠체어를 밀며 집으로 들어가는 50대 남자, 지체장애가 있는 8살짜리 여동생 손을 잡고 학교로 뛰어가는 꼬마 오빠의 행복한 모습을 지금처럼 지켜주고 싶어요. 이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