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의 날’이었던 지난 3일 카카오톡 메신저에는 개구쟁이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모티콘이 등장했다. ‘안녕’ ‘축하해’ ‘사랑해’ ‘고마워’ ‘힘내 대박’ 등 24가지 단어를 글자와 함께 수화로 표현한 이모티콘 ‘히로와 나누는 사랑의 수화’다.

　소비자가 2000원을 내고 수화 이모티콘을 구입할 때마다 다음카카오가 수화로 된 영상도서 제작을 위해 1000원씩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

‘수화도 배우고 기부도 하는’ 이모티콘 프로그램을 직접 만든 강화평(30) 열린책장 대표를 대전 삼성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농인(聾人·청각장애인)들에겐 수화가 모국어인데 국내 28만 명이나 되는 농인들의 언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이모티콘을 직접 디자인한 농인 지혜진(23)씨에게 인터뷰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수화를 배운 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강 대표는 ＂수화 실력은 3살 아이의 옹알이 수준이지만 회사에 비장애인이 4명, 농인이 3명이라 늘 입과 손으로 동시에 말한다”고 했다.

　강 대표는 ＂사업 초기엔 동작인식 센서를 이용해서 수화를 말로 바꿔주는 ‘수화장갑’이나 음성을 수화로 직접 통역하는 ‘수화통역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사회적 기업의 한계였다.

직접 상품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이디어를 줄인 결과가 수화 이모티콘이었다. 그는 “‘소비자들은 수화 이모티콘을 바라지 않는다’ ‘재미없다’ ‘이걸 비장애인들이 사겠느냐’ 같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안녕(Hello)’ ‘고맙다(Thank you)’ 정도는 영어로 하는 것처럼 비장애인들도 간단한 인사는 수화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모티콘 개발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신이 났던 것은 디자이너 지씨와 농인 친구들이다. ‘수화 이모티콘’은 대학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전공한 지씨의 첫 작품이다.

강 대표는 “비장애인 디자이너가 고안한 이모티콘은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것 같은 어색함이 있었다”며 “농인의 손으로 그려야 이들의 언어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씨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목소리와 발음, 어조나 말투가 다른 것처럼 수화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며 “올바른 동작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 ‘안녕’이라고 해보라, ‘사랑해’를 수화로 해보라고 시키고 그걸 보며 스케치했다”고 했다.

　사랑의 수화는 출시 첫날 이모티콘 판매순위 1위를 기록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1만 3000여 개가 판매됐다.

이들은 수익금으로 전국의 1000여 개 공공도서관에 수화 영상도서를 배포할 예정이다. 강 대표는 “농인 10명 중 4명은 ‘금도끼은도끼’ ‘선녀와 나무꾼’ 같은 전래동화를 접해보지 못하고, 접한 사람도 12~13세에 처음 봤다고 한다”며 “동화를 수화로 보여주는 수화 영상도서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가 있듯 청각장애인에겐 수화도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 대표는 ＂메르스나 세월호 같은 주요 뉴스를 수화로 설명하는 ‘스마트 뉴스’를 만들어 대전지역 농인에게 배포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콘텐트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