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초등학교 강준(왼쪽) 교장이 14일 오전 교정에서 제자 박현준 씨와 환하게 웃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강준 / 서울 정릉초교 교장

“학교는 가장 인간다운 곳이 돼야 합니다. 학교에서 인간미 넘치는 교사로부터 보고 배운 학생들이 훗날 가정과 직장에서 더불어 살 수 있고, 자신보다 더 부족한 사람들도 끌어안고 살 수 있습니다.” 13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초등학교에서 만난 강준(62) 교장은 올해로 교직 생활 42년 차로,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강 교장은 오랜 기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장애 학생들을 정성껏 보살핀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지적장애가 있거나 중증 간질, 소아마비를 앓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강 교장은 “장애학생들이 학교에서만이라도 차별받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일반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다른 모양으로 걸음을 걷고, 눈을 뜨고, 다른 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친구로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장은 지난 1998년 서울 도봉구 창동 신화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와 제자로 인연을 맺은 지적장애인 박현준(28) 씨를 18년째 돌보고 있다.

강 교장을 만난 첫해 현준 군은 식사도 스스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학교에 와서도 반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종일 자기 자리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현준 군이 안타까웠던 담임교사는 현준이가 반 학생들과 웃고 떠들기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방과 후에는 컴퓨터를 가르치고 주말이면 현준이의 손을 잡고 등산을 갔다. 현준이는 차차 나아졌다.

그는 “첫 등산 때는 조용하던 등산로에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면 숨기 바쁘던 아이가 횟수가 늘어갈수록 오가는 등산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이를 믿은 보람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증상이 나아진 현준이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전국 장애인 소년체전에 수영 종목 선수로 출전해 금메달도 따고,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1등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현준 씨는 8년 전부터는 강 교장의 출퇴근길에 동행한다. 현준 씨는 강 교장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등하굣길 교문을 단속하고 도서관의 책을 정리하는 봉사활동을 8년째 하고 있다. 현준 씨가 사회로 나가기 전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낀 강 교장이 고민 끝에 마련한 기회다. 처음에는 몸이 불편한 현준 씨를 어색해 하던 학생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한다. 학교에는 현준 씨가 해야 하는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강 교장은 “처음에는 현준이가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폐가 될까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라며 “우려와 달리 현준이가 맡은 일을 잘해낼 때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박수를 쳐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준 씨가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학교생활에서 작은 예외도 허용하지 않았다. 강 교장은 “현준이는 교직원도 학생도 아니어서 법적으로 학교 무료 급식 대상이 아니다”며 “점심시간마다 내 밥을 반 덜어서 같이 먹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장의 이 같은 모범적인 모습 때문일까. 취재 중 학교에서 만난 후배 교사들과 학교 보안관 등 직원들은 “우리 교장 선생님 같은 분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며 입을 모았다.

이런 강 교장도 처음부터 좋은 교사가 돼야겠다는 꿈을 품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다 계모 슬하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우울했다”며 “빨리 집을 벗어나 사회에 나가고 싶어 무작정 교육대학을 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좋은 교사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첫 교생 실습 때였다. 그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고 한없이 믿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반드시 좋은 교사가 되고 말겠다고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강 교장의 교직 생활은 다사다난했다. 간질 발작으로 쓰러진 제자를 살려보겠다고 제자를 들춰 업고 서울 시내를 뛰었던 적도 있고, 소아마비가 심한 제자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고 도둑질에 빠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학생들과 지내는 것이 지칠 법도 하지만 강 교장은 은퇴를 앞둔 지금도 또 다른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강원 홍천군 내면 산골의 낡은 집을 고쳐 도서관을 열 계획이다. 강 교장은 그곳에서 학생들에게 독서 지도를 할 계획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가르치는 것밖에 없어서 퇴직 후에도 초등학생들과 같이 지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교장은 “산골 아이들에게 선물할 책을 한두 권씩 모으는 재미로 은퇴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