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강원 화천군 화천읍 화천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박정식 교사가 체조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2008년 부임 직후 체조부 구성

자질·근성있는 아이들 집중육성

함미주양 밤낮으로‘밀착 지도’

5년만에 체조 유망주로 성장

경기체육중에 입학 ‘큰 보람’

“재능있는 아이들 계속 도울 것”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자칫하면 꿈을 포기할 수도 있었던 미주가 체조 유망주가 됐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며 힘에 부쳐 눈물을 훔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미주를 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21일 강원 화천군 화천읍 화천초등학교에서 만난 박정식(48) 씨는 17년 차 교사다. 그는 지난 2008년 화천초에 부임한 직후 체조부를 만들어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생들을 묵묵히 지도해왔다. 박 교사가 7년간 길러낸 제자 중에서는 체조계가 주목하는 선수들도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함미주(14) 양은 특히 촉망받는 유망주다. 함 양은 경기체육중에서 체조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 교사는 화천초에 부임한 첫해 1학년으로 갓 입학한 함 양을 처음 만났다. 그는 작은 키에 새까만 피부의 함 양이 까만 눈을 반짝거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체조 선수로서 자질을 엿봤다. 박 교사는 “미주는 민첩성, 근력이 남달랐다”며 “아이를 체조 선수로 잘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함 양이 체조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박 교사는 함 양의 남다른 가정사를 알고 고민에 휩싸였다. 그는 “가정방문을 하면서 이혼한 부모를 대신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미주를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 아이를 좋은 선수로 길러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했었다”고 고백했다. 박 교사는 미주 양의 근성과 남다른 자질을 믿고 함 양을 계속해서 지도하기로 했다.

박 교사는 혹여나 손녀가 운동하다 다칠까 봐 걱정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찾아오는 박 교사의 성화에 못 이겨 함 양의 조부모는 체조부 입단을 허락했다. 박 교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안마도 하고 식사도 같이 했다”며 “그때의 일이 계기가 돼 미주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사는 함 양의 훈련을 도울 여자 코치를 화천군 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영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렵게 체조를 시작한 함 양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전국 규모의 체조 대회에 강원도 대표 7명 중 1명으로 뽑혔다. 하지만 기대를 하고 나간 첫 대회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도마 종목에 출전한 함 양이 도마에 잘못 부딪혀 쌍코피를 쏟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 교사는 “아이가 도마에 부딪혀 코피를 흘리며 우는 모습이 귀여워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했는데 아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대회 후 얼마간은 그 날의 실수를 입 밖에도 못 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함 양은 대회 이후 달라졌다. 훈련에도 더 진지하게 임했다. 함 양은 오후 서너 시쯤이면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다른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과 달리 학교에 남아 훈련을 이어나갔다. 함 양은 중학교 입시를 앞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과 같이 밤까지 이어지는 훈련을 버텨냈다. 그는 “아이가 욕심껏 운동할 수 있도록 항상 아이 옆을 지켰다”고 밝혔다.

박 교사의 정성에 힘입어 함 양은 체조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2012년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화천초 체조부 창단 이래 전국소년체전 첫 입상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겨울방학 동안 진행된 두 달여 간의 합숙훈련 기간 박 교사와 함 양은 하루 8∼10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훈련했다. 박 교사는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토요일에는 함 양을 합숙소가 있는 춘천에서 집인 화천으로 일요일에는 다시 화천에서 춘천으로 자가용으로 직접 실어나르기도 했다.

함 양의 합숙훈련 기간 할머니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박 교사는 할머니에 대한 걱정에 주말마다 집에 들르는 함 양이 집을 오가는 길에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운전기사를 자처했다. 그는 “체조 선수는 대부분 훈련기간 발목 부상에 시달린다”며 “당시 미주의 발목도 상태가 좋지 않아 차로 집에 데려다 주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운전대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함 양이 전국소년체전에서 입상하던 날 박 교사와 함 양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입상 소식이 대회장 스피커를 타고 전해지자마자 미주가 쏜살같이 달려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한다”고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화천초를 졸업한 함 양은 체육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전국 규모의 체조대회에서 거듭 입상하고 있다. 그는 “미주는 운동에 대한 욕심이 많은 아이”라며 “아이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박 교사는 함 양이 졸업한 후에도 다문화가정, 편부가정의 학생들을 체조부로 영입해 체조선수로서 꿈을 키워주고 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가난과 가정문제로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교사로서 나의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