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세계평화의 날’ 맞아 유엔 초청 공연 ‘레인보우 합창단’ 김성회 대표

“아에 이오우∼ 아에∼ 이오우.”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로 구성된 ‘레인보우합창단’을 운영하는 한국다문화센터의 김성회 대표(51)는 “아이들이 연습실에서 입을 모아 발성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와서 뭉클하다”고 말했다. 일곱 빛깔 화음으로 노래하는 레인보우합창단은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제31주년 세계 평화의 날 기념식’에 공식 초청을 받아 무대에 오른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중에는 주민등록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며 “이들을 우리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유엔 공연을 위해 합창단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하는 김 대표를 서울 중구 중림동 한국다문화센터에서 출국 하루 전날인 지난 12일 만났다. 그는 “예술단이 세계 평화의 날 기념식에 공식 초청을 받아 유엔본부 무대에 서는 것은 레인보우합창단이 처음”이라면서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은 국가 간 가교 구실을 할 인재이기에 국제 네트워크의 상징인 유엔본부에서 공연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3년 전부터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계시고 하니까 이번 공연에 도움을 줬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비서실에서도 묵묵부답이었는데, 유엔 공보국(DPI)에 공연 영상과 함께 제안서를 보냈더니 하루 만에 ‘OK’ 사인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다문화 어린이 합창단이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겁니다. 마치 이슬람 국가에서 여권신장 운동을 하는 그런 정도로 비춰진 듯해요. 합창단의 결성 취지와 활동 내용이 유엔이 표방하고 있는 국제연대와 평화의 이념과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레인우합창단은 현재 13개국 다문화가정의 어린이 43명이 단원으로 활동한다. 이번 유엔본부 공연에는 9개국 23명의 단원이 참가해 세계민요 메들리와 아리랑 두 곡을 부른다. 김 대표는 “애초 24명의 단원과 함께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솔로 파트를 맡은 필리핀 국적의 린(13)이 출국 하루 전날까지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공연 콘셉트를 바꿔야 해서 안타깝다”며 “이번 공연이 국내 20여만명 다문화 어린이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재야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권에도 몸담았던 김 대표는 2005년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가 방한했을 때 국내 혼혈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다문화 분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국다문화센터 설립에 나섰다. 2008년 12월 창립 세미나를 연 뒤 이듬해 1월 사단법인 설립 인가를 받았고, 지난해 1월 공동대표를 거쳐 지난 5월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처음에 다문화가정의 어린이 대학생 멘토링 사업을 시작했는데 다문화 어린이나 청소년을 보면 친구도 없고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게임에만 빠져 있거나 대화도 전혀 하지 않으려고 했지요. 학교에 장기 결석하고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학교에 나가는 아이들은 ‘왕따’였지요.”

레인보우합창단은 2009년 7월 창단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합창단을 꾸렸다”며 “다문화 학생이 있는 서울 시내 70개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간신히 지원자를 모아 음정대로 소리를 낼 줄 아는 어린이 33명으로 합창단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레인보우 합창단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떨치고 몇 달 만에 국내 유수의 어린이 합창단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G20 정상회담 특별만찬(2010년), 여수세계박람회 개막식(2012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2013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2014년) 등에서 ‘무지갯빛 화음’을 선보였다.

김 대표는 “합창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무대에서 박수를 받으면서 많이 달라졌다”며 “말도 많아지고 표정이 밝아졌다”고 했다.

“체면과 유교 의식 등 한국 사회를 덮고 있는 껍데기가 벗겨져야 해요. 흔히 복지 위주의 다문화 정책을 얘기하는데 그게 한국사회의 가식이지요. 무언가를 베푼다는 심정으로 다문화 문제를 접근하면 안됩니다.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들을 배려와 구호 대상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 희망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해야 하는 것이지요.”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