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과 인연없던 보치아 세계랭킹 1위…6전7기만에 개인전 金
"강하게 키워준 엄마와 감독님·후원자들 감사"

■ 리우 패럴림픽 금메달 정호원 선수·권철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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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달 리우패럴림픽 해단식이 끝나자마자 소속팀 속초시장애인체육회에서 다시 연습을 시작한 정호원 선수(왼쪽)·권철현 감독.

보치아 개인 랭킹 세계 1위 정호원 선수(30·속초시장애인체육회). 그에게 이번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은 6전7기의 도전이었다. 세계 랭킹 1위를 자랑하는 그였지만, 유독 장애인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패럴림픽 개인전 금메달은 영원히 그의 것이 될 수 없는 듯했다. 모두 그의 운은 여기까지라고 여겼다. 하지만 정호원 선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나섰다. 정 선수는 여기까지 오게 해준 어머니, 감독 그리고 후원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갔고, 그를 괴롭히던 징크스도 이번에는 따라오지 않았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정 선수를 뒷바라지해 온 권철현 감독(43)은 그를 번쩍 안아 올렸다. 팔을 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정 선수는 승리의 몸짓으로 팔을 높이 뻗었다.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날아오른 '거위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서른 살의 그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 "엄마, 저를 강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치아는 뇌성마비장애인과 기타 중증장애인을 위한 재활 스포츠로 표적구에 공을 던져 표적구로부터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하여 승패를 겨루는 경기다.

리우패럴림픽 해단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연습을 시작한 정 선수와 권 감독을 속초장애인체육회에서 만났다. "좀 쉬고 싶은데 바로 또 연습이네요" 정 선수는 전동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지만 활짝 웃으며 권 감독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10여 년을 함께 지내오며 피붙이보다 더 가까운 그들은 서로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이다.

정 선수는 생후 100일쯤 낙상 사고로 뇌성마비 장애인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년 시절엔 집에 화재가 발생해 가족 전체가 큰 화상을 입었다. 어머니는 몸을 움직이기 힘든 그를 먼저 안고 나왔고 불길에 갇혀 바로 빠져 나오지 못한 형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 삶이 버거운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고 남은 두 아들을 키우는 건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다.

특수학교를 다니며 보치아에 입문한 정 선수는 선수의 길 대신 취업을 꿈꿨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한 달에 100만원씩 어머니께 드리는 게 그가 품어온 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그는 면접장에 가도 질문을 받을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다.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 당시 정 선수는 엉엉 울며 권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권 감독은 2002년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 출전하며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정 선수의 명석한 판단력을 믿은 권 감독은 선수의 길을 제안했다. 둘의 운명 같은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경기 승리 직후 환호하는 정호원 선수(왼쪽)·권철현 감독. [사진 제공 = 김영복 작가]

 "정말 쉽지 않은 길이었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대기업 사회공헌팀마다 메일을 보냈지만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이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죠. 2006년은 저희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였어요. 베이징장애인올림픽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리우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이동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적처럼 한 후원자를 만났다. 칠레에 살던 동포 사업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또 장애인을 위한 특수차량을 제작하며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온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도 이들의 사연을 듣고 팔을 걷어붙였다. 강 회장은 2008년부터 9년째 보치아 국가대표팀을 지원하고 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했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 단체전 금메달로 받은 포상금과 연금으로 어머니의 빚도 갚고, 모교에 매학기 장학금도 보내고 있다.

정 선수의 금메달로 한국은 세계 보치아 강국이라는 위상을 굳건히 했다. 이번 리우패럴림픽까지 8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올림픽의 양궁'에 비견될 만한 효자 종목이 됐다. 이렇게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나가는 정 선수와 권 감독은 여전히 간절한 꿈을 꾼다.

"보치아 강국답게 많은 실업팀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중증 장애인에게 보치아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바로 보치아이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처럼 일반인도 즐기는 스포츠로 저변이 확대된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