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도우며 살다보면 다 잘될 것”
ㆍ13년간 ‘사랑 실천’ 정헌일씨

적은 수입에도 꼬박꼬박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정헌일씨가 지난 18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상남로 경남경찰청사에 있는 작업실에서 구두를 닦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경남도청 일대 관공서 등에서 구두를 닦는 정헌일씨(59)는 매월 적은 수입을 쪼개 13년째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정씨는 가난 때문에 평생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한글을 제대로 쓰거나 읽지 못한다.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정씨는 2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8살 때부터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친구들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때쯤의 나이에 머슴 생활을 그만뒀다. 14살이 되면서는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판금 일을 했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글을 몰라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찾은 직업은 광부였다. 그렇지만 10년 만에 탄광이 폐쇄되면서 다시 일터를 잃었다.

광부로 일하면서 결혼을 한 터라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지만 ‘문맹’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막노동밖에 없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고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40여 차례나 응시했지만 몇 문제를 읽다 보면 시험시간이 끝나 매번 낙방했다. 그는 운전면허 시험관이 문제를 읽어주고 응시생이 답을 적는 문맹인을 위한 시험방법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1990년대 말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그동안 염전 노동자로, 목수로, 엿장수로 전전하다 2005년 자리를 잡은 것이 구두닦이였다. 정씨는 이때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창원시 도계동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씨는 현재 매달 30만원을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유니세프 등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정씨는 구두 한 켤레 닦는 데 3000원, 한 달에 600~700켤레를 닦아 200만원 안팎을 번다. 여기에 주말에는 틈틈이 막노동도 한다. 그는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저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3년 전부터 경찰서와 소방서 직원 등을 대상으로 강연도 한다. 원고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기에 여러 차례 거절하다 간곡한 부탁에 한 시간 분량의 강연을 하게 됐다. 정씨의 진솔한 강연은 늘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박수를 받는다.정씨는 시커먼 구두약을 하루 종일 손에 묻히고도 깨끗하게 변한 구두를 보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세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정씨는 “남을 돕고 열심히 살다 보면 내 자식들도, 국가도 잘될 것이라 믿는다”며 밝게 웃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