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 헤딩하듯 시작한 반달곰 복원 10년만에 `할아버지 곰` 탄생시켰죠
사향노루 복원도 꿈꿔…北과 협력하면 더 수월할 수도

 

최근 전남 구례군 마산면 소재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을 방문한 송동주 종복원기술원장 옆으로 반달곰 RF-107번 개체가 반갑다는듯 다가오고 있다. [이승환 기자]

벽에는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가 걸려 있었고, 지도에는 1번부터 56번까지 숫자가 적힌 자석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자석 1개는 반달가슴곰 1마리를 뜻한다. 지도는 멸종 위기 지리산 반달가슴곰 56마리의 서식지다. 수천 년 전 그림을 되살려내는 복원 미술가처럼 곰을 한 마리 한 마리 복원해낸 그의 10년 여정은 남달랐다. 송동주 종복원기술원장(51) 얘기다. 최근 전남 구례군 종복원기술원에서 만난 그는 말을 끝맺을 때마다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구릿빛 피부에 탄탄한 몸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시선과 말에는 강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반달가슴곰 '족보'를 그릴 수 있는 건 우리나라뿐이죠. 세계 최초로 3세대 출산까지 성공했거든요."

송 원장은 2007년부터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곰 전문가다. 송 원장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곰은 거의 없었다. 작은 1개 조직에 불과했던 반달가슴곰팀은 직원 80여 명이 근무하는 종복원기술원으로 커졌다.

송 원장은 "처음 시작할 땐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었다. 열심히 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다 보니 성과를 내는 족족 '최초' 수식어가 붙었다. 연구가 어느 정도 쌓이자 해외에서도 알아주기 시작했다. 3세대 출산에 성공한 것, 혈통 계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 흑곰류 인공수정에 성공한 것 모두 국내 종복원기술원이 세계 최초다.

송 원장은 산양, 여우 등 다른 멸종위기종 복원에도 힘쓰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사는 멸종 위기 동물과 유전적으로 같은 종을 해외에서 들여와 자연 상태에서 개체수를 증식시켜 생태계를 복원하는 게 그가 하는 핵심 업무다.

부산에서 태어나 해양대를 졸업한 바다 사나이가 운명처럼 산에 이끌려 각종 야생동물을 복원해낸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양대 출신이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한 이유는.

▷산에 미쳐 있었다. 하하. 대학 시절 산악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산에 갈 때마다 너무 좋았다. 암벽을 탈 때면 공부로 찌든 마음이 모두 정화되는 것 같았다. 당시 해운회사가 잘나갈 때라 동문들은 그쪽으로 많이 입사했다. 그런데 나는 좋아하는 산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1992년 국립공원공단에 들어갔다.

―멸종위기종 복원업무를 맡게 된 계기는.

▷돌이켜보면 운명이었던 거 같다. 처음 국립공원공단에 입사했을 때는 본부에서 총무와 회계 등 행정업무만 담당했다. 산에서 근무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계속 지원한 끝에 2003년 드디어 지리산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지리산을 진짜 원 없이 다니며 소원을 풀었다. 계곡, 골짜기, 봉우리 어디 안 가본 곳이 없다. 이 경험 때문인지 2007년 내게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업무가 주어졌다. 이후 10여 년간 반달가슴곰, 산양, 여우 등 각종 멸종위기종을 복원했다. 처음엔 부모님마저 '네가 왜 짐승을 키우냐'며 반대하셨지만 이젠 이 업무를 하기 위해 살아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이유가 뭔가.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을 대표하는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반달가슴곰을 중심으로 하위종이 살 수 있는 생태계가 우산처럼 펼쳐지곤 한다. 가령 반달가슴곰은 과일, 도토리 등 먹이를 30%만 소화시키고 나머지는 배설한다. 하루 10㎞까지 이동하는 곰이 먹고 싸고를 반복하니 여러 가지 종자가 널리 확산될 수 있다. 종자가 퍼지고, 꽃이 피고, 벌이 날아들고, 숲이 울창해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동물이 머물 보금자리도 생겨난다. 공존관계를 만드는 핵심종이기에 의미가 있었다. 단군신화에서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상징적 동물이기도 했다.

―반달가슴곰은 지금 몇 마리나 있나.

▷현재 활동하는 건 총 56마리다. 이 중 우리가 방사한 게 17마리고, 야생에서 태어난 게 39마리다. 2004년 러시아에서 반달가슴곰 4마리를 처음 받아온 후 지금까지 총 97마리가 이 땅을 거쳐갔다.

―때로는 곰이 자식같이 느껴질 것 같다.

▷나와 직원들이 관리해서 자연 방사한 놈이 건강하게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고 이런 거 보면 우리 집안을 보는 것 같다. 처음에는 반달가슴곰마다 재석이, 반돌이, 천왕이 등 이름을 따로 붙여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곰을 자꾸 애완동물 취급하게 되더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야생동물인데. 사망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이젠 일부러 이름을 안 붙이고 관리번호를 만들어 부른다.

―반달가슴곰 복원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은.

▷복원사업은 단순히 새끼를 키워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끝나는 게 아니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줘야 한다. 안전하게 포획하기 위해 산 곳곳에 '드럼통 트랩'을 설치해 뒀는데, 이것도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당연히 모든 작업은 산에서 이뤄진다. 산에 한 번 올라가면 왕복 10㎞ 이상 걷는 건 기본이다. 하루에 두 번 이상 등산할 때도, 장마철이라 비가 쏟아지는데 24시간 산속에 머무를 때도 있다.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보니 웬만한 애착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성질도 나빠지는 것 같다. 하하. 특히 오소리가 미워 죽겠다. 드럼통 트랩에 동물이 들어가면 종복원기술원으로 신호가 온다. 곰이 잡힌 줄 알고 힘들게 산에 올라가 드럼통을 열었는데 오소리가 있으면 어휴. 꿀밤을 때리고 싶어진다. 다시 장치를 하나하나 설치하는 것도 오래 걸리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곰을 잡는다니 위험한 순간도 많았겠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 고충이 크다. 한번은 곰의 마취가 빨리 풀린 적이 있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수의사가 안대를 벗겼는데 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 거다. 보통은 마취가 천천히 풀려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 이 놈이 시야가 확보되니까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 세 사람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한 사람은 절벽 바위 틈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피했다. 바위 틈에 낀 사람이 52㎏으로 몸이 왜소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그나마 지금은 포획 트랩을 개발해 좀 나아진 편이다. 완전 초기에는 '추적 포획'을 했다. 보름이 넘도록 산을 뒤져도 한 마리 잡을까 말까 했다. 안 되겠다 싶어 해외 사례를 찾아보니 동면에 들어간 곰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수의사가 괜찮다고 하길래 우리도 '동면 포획'에 나섰다. 그랬더니 포획률이 90%에 달했다. 문제는 이게 어느 순간 학습이 돼 곰이 더 이상 굴 안에 있지 않았다. 야외에서 잡기는 무척 어렵다. 고민 끝에 우리가 개발한 게 드럼통 포획 트랩이다. 드럼통 2개를 붙여서 맨 끝에 먹이를 두고, 곰이 들어오면 문이 닫히도록 만들었다. 아이고 근데 이것마저 학습이 됐다. 곰들이 문이 닫히는 걸 막기 위해 뒷발을 밖으로 빼고 먹이만 가져갔다. 그래서 아예 끝까지 들어와야 먹이를 잡을 수 있게 드럼통 3개를 붙여놨다. 이젠 곰들이 엄청 배고플 때 아니면 쉽게 안 들어온다.

―자연에 그대로 두면 안 되나. 포획을 왜 하냐는 비판도 있다.

▷사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반달가슴곰은 야생동물이다. 사람과 공존하려면 적어도 곰이 어디에 있는지, 혹시 문제를 일으키는 개체는 아닌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조치도 가능하다.

―산속에서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하면 살 수 있나.

▷절대 하지 마라. 죽은 척하기 위해 엎드리면 굴복한다는 의미가 돼 버린다. 차라리 시선을 살짝 피하고 뒤로 천천히 물러나라. 너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다만 내가 아는 한 곰이 잠복해 있다가 사람을 해치는 경우는 없다. 곰도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면 놀란다. 산에는 기본적으로 2~3명이 함께 가는 게 좋다. 깊이 들어가야 하면 종을 달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종이 딸랑거리면 동물이 알아서 피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달가슴곰을 꼽자면.

▷첫 출산의 기쁨을 안겨준 NF―10번이다. 반달가슴곰을 들여온 후 5년 만인 2009년 야생 출산에 처음으로 성공한 곰이 나타났다. 복원사업의 기본은 자연에 방사된 곰이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동면하고 새끼를 낳는 거다. NF―10번 개체 덕분에 드디어 성과를 얻나 싶었다. 하지만 찰나의 기쁨이었다. 3~4월에는 눈이 녹아 바위굴 틈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필 NF―10번 개체의 동면굴이 그랬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해발 1600m 고지의 작은 바위 틈새 구조까지 알긴 어렵다. 나중에 폐쇄회로(CC)TV 돌려보니 이 곰이 새끼를 보온하려고 낙엽을 주워 백 번 넘게 굴을 들락날락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새끼를 물고 밖으로 나왔다. 이 과정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비해 동면굴에서 100m 떨어진 지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무거운 곰 사체를 들고 6시간 동안 하산하는데 어찌나 허망하던지. 그때 술을 엄청 마셨다. 물론 그 이후에 야생 출산이 많았지만 처음이란 특별함 때문일까. 여전히 NF―10번 개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해 인공수정으로 출산한 곰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흑곰류의 임신 과정을 알아내 인공수정까지 성공한 건 우리가 세계 최초다. 그전까지 곰의 배란기도 알려진 바가 없었다. 배란기를 정확히 알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곰의 오줌과 질 분비물을 받아서 호르몬 검사를 했다. 오랜 연구 결과 암컷의 배란기는 딱 3일에 불과했다. 게다가 곰은 6~7월에 교미를 해 수정난을 가지고 있다가 12월쯤에야 자궁에 착상을 시키더라. 이를 '지연 착상'이라 한다. 출산도 동면 상태에서 한다.

―자면서 새끼를 낳는 건가.

▷동면은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동면 출산은 좀 까다롭다. 암컷은 먹이를 제대로 못 먹었거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냥 출산을 안 해버린다.

송

동주 원장이 방생한 반달곰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기자]

―왜 인공수정을 시도했나.

▷복원사업 1단계는 개체수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2단계 목표는 개체수를 지키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달가슴곰 한 쌍이 새끼를 아무리 많이 낳아도 결국 같은 핏줄이다. 근친 교배가 세대를 이어 계속되면 머지않아 기형아가 탄생한다. 전염병이 퍼졌을 때 전멸할 가능성도 크다. 개체수에 비례해 유전적 다양성이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곰도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하고만 교배를 한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몇몇 개체만 출산에 참여한다. 현재도 수컷 4마리와 암컷 5마리만 새끼를 낳고 있다. 나머진 이 세력을 침범하지 못하고 겉돈다. 결국 공간이 한정된 상태에서 개체군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온 곰의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복원사업의 3단계 목표는 뭔가.

▷지역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 제2, 제3의 반달가슴곰 군락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반달가슴곰은 현재 지리산에만 거주한다. 하지만 모든 개체가 한곳에 모여 있는 건 위험하다. 덕유산 설악산 등에도 곰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게 좋다.

―반달가슴곰 KM―53이 지리산 탈출을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로드킬을 당했다.

▷KM―53은 지역 다양성 관점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곰이다. 지리산 서식 환경은 점점 포화 상태에 이르러 분산이 필요하긴 하다. 문제는 야생동물이 국립공원을 벗어나면 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로드킬을 당할 수도 있고, 올무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지리산에는 올무에 걸려 앞발을 잘라낸 곰도 있다. 여전히 밀렵도 존재한다. 웅담을 만병통치약이라며 비싸게 팔아먹는 족속은 이게 심각한 범죄인 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서식지를 확장하는 건 지역 주민의 동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주민 입장에선 근처에 곰이 있는 게 무섭기도 하겠다.

▷아무래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가 야생동물을 100% 통제하는 건 무리지만 보호팀을 강화하는 등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 대외협력팀 업무도 늘릴 계획이다.

―지역 다양성 관점에서 산양은 성공한 것 같다. 최근 서울 용마산에서도 발견됐는데.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양은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편이다. 현재 설악산에만 300마리 이상의 안정된 개체군이 있다. 월악산 오대산에도 50~90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복원 3단계인 서식지별 연계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발견된 것도 개체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분산한 결과라고 보인다.

―용마산에서 발견된 산양은 어디서 온 건가.

▷정확한 건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아마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포천 쪽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서울 북부까지 이어지는 한북정맥을 따라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양이 서울에서 계속 살면서 안정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까.

▷우선 용마산에 나타난 산양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확인하는 중이다. 개체군이 형성되려면 다른 지역 산양과 교류를 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산양 이동 경로가 암컷은 1.5~2㎞, 수컷은 4㎞가량 된다. 설악산~속리산 거리가 수백 킬로미터니까 속리산 산양이 생기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로드킬을 당한 사례도 있고. 용마산에서 발견된 산양도 조사를 해보고 서식지를 옮겨줄 건지, 짝을 찾아 풀어놓을 건지 결정할 계획이다.

―주요 산마다 복원을 시도하는 멸종위기 동물이 다르다. 소백산에선 여우를 복원하고 있던데.

▷그렇다. 여우는 개과 동물인 데다 새끼를 많이 낳으니 복원하기가 용이할 줄 알았다. 주민 피해도 크지 않을 거라 생각해 2012년 중국 동북부에서 국내에 살던 여우와 같은 종을 받아 복원을 시작했다.

―현재 여우가 몇 마리나 서식하나.

▷소백산에 약 70마리가 있다. 여우는 복원 1단계 수준으로 기술개발 중이다. 자연에서 자기들끼리 교미해 새끼를 낳아야 할 텐데. 아직은 증식 방법을 찾고 있다.

―복원이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은가 보다.

▷여우 복원이 쉬울 거라는 건 착오였다. 복원이 너무 어려운 종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조심성이 많다. 어미가 불안하면 새끼를 물어 죽인다. 보통 새끼가 3~4월에 많이 태어나는데 잘 성장하다 장마철 들어 감기에 걸려 죽기도 한다. 다 큰 여우들은 홀로 생활한다.

―여우 개체수를 어떻게 늘릴 계획인가.

▷하나의 지역을 정해 여우를 대량 방사하려고 한다. 여우는 서식지를 잘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교미를 위해선 인근 4~5㎞ 안에 개체가 많아야 한다. 대한민국 전역에 여우를 100마리 풀어놓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에 올해 8월 중순부터 10월까진 한번에 20마리 이상 여우를 방사할 계획이다.

―여우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진 않나. 무덤을 파헤친다는 속설도 있는데.

▷여우는 주로 두더지와 쥐를 먹는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을 되레 잡아 먹는 것이다. 물론 닭은 한두 마리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심성이 많아 웬만하면 사람이 키우는 닭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여우가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도 거짓말에 가깝다. 땅굴을 파는 습성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퍼진 듯하다.

―여우를 어디에 방사할 계획인가.

▷여우는 역사적으로 항상 마을 근처에 살아왔다. 실제 여우를 산에 풀어놔봤자 다시 마을 근처로 내려오곤 한다. 그래서 이젠 아예 자연 방사하기 전에 여우에게 '마을 투어'를 시켜준다. 차에 태워 다니면서 '저 집은 어떤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이야'라고 말도 해준다. 투어를 반복하면 주민들도 여우를 친숙하게 여긴다. 그래도 여우가 절대 자신을 만지게 하진 않는다. 소백산 여우 중 한 마리는 아예 종복원기술원 사무실 앞에 사는데 우리가 주는 먹이는 먹어도 자신을 쓰다듬게 허락하진 않더라.

―실제 여우는 영리한 동물인가.

▷영리하기도 하고 조심성이 아주 많다. 여우는 바깥에 출입할 때 새끼를 분산 배치한다. 포획 작업에 나서면 여우가 새끼를 다른 장소에 두고 우리를 멀리 유인한다. 미련한 곰, 똑똑한 여우라는 말도 이런 습성 때문에 나온 듯하다. 곰은 동면굴에 가만히 있는 걸 잡으면 되는데, 여우는 왔다 갔다 난리를 친다.

―다양한 멸종위기종을 복원하는 게 왜 중요한가.

▷동물을 복원하는 효과는 당장 눈에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동물 복원은 결국 돌고 돌아 인간에게 이득을 준다. 가령 예전에 중국에는 참새가 많았다. 참새가 자꾸 곡창지대 벼를 먹어버리니까 대기근 때 일망타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참새가 사라진 후 들녘에는 메뚜기떼가 창궐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과거 미국에선 가축을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늑대를 몰살시켰다. 그러나 늑대가 없으니 사슴이 창궐해 가축이 먹을 풀이 남아나질 않았다. 즉 동물도 적절한 개체수가 생태계 안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절대 선한 동물도, 절대 악한 동물도 없다. 멸종위기종을 복원하는 건 단순히 짐승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산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순환시켜 결국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우리가 멸종위기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가장 기본은 산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거다. '음식물 쓰레기는 썩으니까 괜찮겠지'란 생각은 잘못됐다. 채소와 과일 껍질에 있는 농약은 야생동물에는 치명적이다.

―앞으로 어떤 종을 복원하고 싶나.

▷멸종위기종 중에서도 개체수가 아주 적은 편인 천연기념물 제216호 '사향 노루'를 복원하고 싶다. 주로 강원도 인근 북쪽에서 나타나는 동물이다. 현실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호랑이나 표범을 복원하는 건 주민들이 반대해 종을 보유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송동주 원장이 밀렵꾼들이 사용하는 덫과 올가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승환기자]

―사향 노루는 북한에도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남북 교류는 추진 안 하나.

▷글쎄 모르겠다. 그건 상위 기관에서 결정할 문제다. 우리야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긴 하다. 북한에서 데려오면 해외 다른 국가에서 받아오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고 좋으니까. 지속적으로 교류하면 한반도 동식물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텐데 말이다. 듣기로는 금강산 묘향산은 보존을 잘 해놔서 야생동물이 많다고 한다.

―종복원기술원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섬에 있는 것처럼 한 군데 고립되지 않고 백두대간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뉴스를 딱 봤는데, 지리산 곰이 설악산까지 갔다는 소식이 나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뉴스를 보며 혼자 씨익 웃는 나.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다.

■ 송동주 종복원기술원장은

국내 최고의 멸종위기종 복원 전문가다.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국해양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92년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입사한 후 총무부, 지리산 분소, 주왕산국립공원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다. 2005년 자원보전처 보전팀장을 역임한 후 2007년 멸종위기종복원센터장에 임명됐다. 이후 2013년 잠시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장을 맡은 뒤 2015년 종복원기술원장에 다시 취임했다. 10년 넘게 종복원기술 업무를 도맡고 있는 베테랑이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