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평화 분위기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탈북자 모녀 '평화 통일이 된다면 고향 꼭 찾아갈 것'

탈북자 모녀 유혜림 씨(가명·58·왼쪽)와 김명희 씨(가명·32세)가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한 가정집에서 마주보며 대화를 하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한 가정집에서 만난 탈북자 모녀 유혜림 씨(가명·58)와 김명희 씨(가명·32세). 이들은 북한에서 헤어진 지 14년 만에 지난 10월 남한에서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갖은 고생을 겪은 뒤 서로를 다시 보게 된 모녀는 기자의 질문에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어머니 유 씨는 2009년 11월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해 2011년 라오스를 거쳐 남한으로 들어왔다. 궁핍한 삶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탈북을 결심한 까닭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큰딸 때문이었다.

유 씨의 두 딸은 사춘기를 지나자 돈을 벌겠다며 중국을 왕래했다. 작은딸이 중국으로 넘어간지 1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큰딸이 이를 찾겠다며 중국으로 향했다. 큰 딸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국가안전보위성(북한 비밀경찰기구) 직원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압송 당했다. 유 씨는 "조사를 받으며 고문을 당한 첫째 딸을 본 순간 '북한에서 살면 안되겠다'고 결심했다.

큰 딸은 다시 중국으로 넘어갈 때 "자기 딸을 잘 지켜달라"며 손녀를 맡겼다. 그 뒤로 한참 소식이 없자 탈북을 결심하고 손녀와 함께 집을 떠났다. 북한을 떠나 라오스에 있을 때 큰 딸이 중국에서 보위성 직원에게 붙잡혀 도망치다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 씨는 “총살로 딸을 잃은 엄마의 마음은 그 누구도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탈북자 모녀 유혜림 씨(가명·58·오른쪽)와 김명희 씨(가명·32세)가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한 가정집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그는 라오스에서 3개월가량 머문 뒤 2011년 남한에 도착, 국정원 조사와 하나센터에서의 정착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왔다. 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작은딸 명희 생각이 났다. 주변 사람들은 북한이탈주민이 참여하는 TV 프로그램에 나가 명희를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는 방송에 나가 "딸을 찾고 있노라"며 "명희가 꼭 방송을 보고 연락했으면 좋겠다"고 애타게 심정을 드러냈다.

작은 딸 김명희 씨는 어머니보다 4년 늦은 2015년 남한으로 탈북했다. 가족 행방을 수소문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자신이 탈북했다는 정보가 보위성에 들어가면 어머니와 언니가 고문을 당할 것이라는 걱정에 애만 태우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네가 찾던 엄마와 닮은 느낌을 주던 출연자가 있었다"고 얘기했다. 다시 켠 TV 속 얼굴은 꿈에 그리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두 모녀는 헤어진 지 14년 만에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탈북자 모녀 유혜림 씨(가명·58·오른쪽)가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한 가정집에서 만삭인 딸 김명희 씨(가명·32세)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남한에서 좋은 남편을 만나 출산을 앞둔 명희 씨는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컸는데 어머니를 만나 너무 행복하다"며 "하늘에 있는 언니를 생각하며 잘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모녀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TV를 통해 지켜봤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 평화로 향하는 것에 대해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이들은 "북한에 살기 싫어 탈북했지만 그래도 고향이고 어렸을 적 추억이 깃든 곳"이라며 "지금은 갈 수 없지만, 평화통일이 돼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던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탈북자 모녀 유혜림 씨(가명·58·오른쪽)와 김명희 씨(가명·32세)가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한 가정집에서 케익 촛불을 불며 명희 씨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뉴스1과 인터뷰가 이뤄진 이 날은 김 씨의 생일이었다. 윤 씨는 딸이 북한에서 맛있게 먹던 북한식 아바이 순대를 대구에서 직접 만들어 안산까지 가져왔다. 14년 만에 만난 두 모녀는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함께 불며, 아직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도 언젠가는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뉴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