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사단 자운식당 조리병들에게

군부대 민간 조리사로 일하는 나는 최근 새 근무지에서 열 명의 귀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만나게 됐다. 최신식의 병영식당도 단계적으로 다수 운영되고 있지만, 내가 이동한 병영식당은 아직 예전의 시설이었다(내년 공사 계획). 하지만 청소나 정비가 잘돼 있어 그동안 조리병들의 수고가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열 명의 조리병과 일을 시작하던 날, 나와 조리병들은 서로 어색한 미소로 짧은 인사를 나눴다. 나는 국에 들어갈 콩나물을 씻거나 창고에서 설탕이나 간장 등을 꺼내 달라며 조리병들의 이름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전에 일하던 병영식당보다 식수 인원이 배로 많다 보니 국도 두 배로 끓이고, 무침과 튀김, 볶음도 모두 두 배씩 해야 해서 솔직히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다.

서먹해 하는 나에게 처음으로 눈을 맞추며 다가와 준 우정이는 내가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고 친절하게 알려준 속 깊은 친구다. 우정아, 정말 고맙다. 한 달 후 전역을 앞둔 분대장 세원이는 귀공자티가 줄줄 흐르는 멋진 친구로 조용히 맏선임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당차고 야무진 민웅이는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를 하면서도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고 빈틈없이 일을 해내는 모습이 감탄스러울 정도다. 배우 현빈보다 더 잘 생긴 현빈이는 취사장의 비타민이고 분위기 메이커다. 이문세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고된 일도 즐겁게 하는 모습은 마스크 속에 감춰진 내 입꼬리를 한껏 올라가게 한다. 훤칠한 키에 카이스트 공학도 같은 예리한 포스를 내뿜는 성우는 그 많은 양의 튀김을 어찌나 꼼꼼하게 하는지, 얼마 전 얼굴에 기름이 튀어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젊은 피부라 그런지 흉터 없이 회복돼 참 다행이다.

태민이는 김치를 썰고 나물을 무치는 손끝의 내공이 20년 살림한 여자 못지않게 훌륭하다. 군대 오기 전엔 한 번도 주방 일을 한 적이 없다는데 지금처럼만 하면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인들 못 할까 싶다. 난 목소리에도 인격이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그 믿음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 준 재현이. 편안하고 신뢰감 그득한 백만 불짜리 목소리와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진지한 눈빛은 9시 저녁 뉴스의 믿음직한 앵커로 딱 맞는 듯하다. 깊고 검은 눈빛에 차분한 성격을 지닌 혁주를 보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연상되는데 지금 삼찬을 익히느라 혁주의 조리복은 언제나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혁주가 좀 더 쉽고 맛있게 조리할 수 있도록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줄 생각이다. 매끼 취사를 시작할 때마다 40㎏ 쌀 포대를 번쩍 들고 와 세미기에 쏟아붓는 은빈이. 밥물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항상 고슬고슬한 밥을 해줘서 너무 고맙고, 조리학교에 다니다 온 친구답게 풋고추를 곱게 썰어놓은 솜씨가 정말 예술이다. 엄청난 양의 부식을 오차 없이 청구하고 챙겨오느라 늘 분주한 진이, 진이의 수고가 있어 조리병들과 내가 마음 편히 조리할 수 있는 것이리라.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전투력의 기본인 급양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땀 흘리는 조리병들. 그들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이미 나와 한몸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세원, 민웅, 현빈, 태민, 우정, 성우, 재현, 혁주, 은빈, 진. 머잖아 우리는 헤어지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내 마음속에 빛나는 별들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모두 고맙고, 자랑스럽고, 사랑한다. 56사단 자운식당 김한우 급양관리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오영주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