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
청각장애 가진 초·중·고·대학생
20년째 매년 연말 정기 연주회
“연습 힘들어도 무대에선 힘 솟아”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 단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음악 연습실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정우 수석단원, 이준희 단원, 최수종 부수석단원. /고운호 기자
“아니야, 잠깐. 이 부분에서는 조금 더 크레센도를 세게 줘야 해. 처음부터 다시 가봅시다.”

10일 오후 6시쯤 찾은 서울 서초구의 한 음악연습실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50여 명이 모여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연주에 한창이었다. 트럼펫, 바이올린, 드럼 등 수많은 악기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초·중·고·대학생 30여 명은 지휘자와 음악감독의 지시에 따라 또랑또랑한 눈으로 집중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이들은 바로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 단원들.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릴 ‘제17회 정기 연주회’를 위해 앙상블 단원들은 20여 명의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 약 네 시간 동안 연습을 이어갔다. 영화 ‘라라랜드’ OST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OST 등을 반복해 연주하며 합을 맞췄다.

2003년 창단한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앙상블(앙상블)’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지만 인공와우 수술(소리를 전기 자극으로 바꿔주는 내부 장치를 달팽이관에 이식하는 의료 기법) 또는 보청기를 통해 청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유소년·청년들로 구성된 연주단이다. 이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청각장애 아동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지원하고 청각장애 유소년·청년들의 사회정서적 재활 지원을 돕는 단체다. 앙상블은 2004년부터 연말마다 정기 연주회를 갖고 있다. 앙상블 단원들은 기계의 도움으로 소리를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미세한 음정의 차이를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음악을 연주하는 데 있어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는 더한 노력이 든다. 그럼에도 많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앙상블을 찾는다. 단원들은 “앙상블은 청각장애 학생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곳이자 클라리넷 연주를 통해 신체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5년째 앙상블에서 활동 중인 수석 단원 손정우(25)씨는 이날 최종 리허설 내내 어린 동생들의 클라리넷을 직접 조율해주고 정확한 음을 내도록 도왔다. 세 살 때 에바스 증후군(전정수도관확장증후군)으로 청력을 잃었다가 일곱 살 때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는 손씨는 음악 재활 치료를 받아보자는 어머니의 권유로 앙상블에 들어오게 됐다.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해 일반전형으로 음대에 들어갔다. 그는 한때 대학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고 전문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꿨지만, 대학교 3학년 때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앞니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정확히 듣지 못하는 것 또한 내 숙명이라 생각하고 이겨냈지만, 클라리넷을 고정할 앞니를 잃고 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손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꿈”이라고 했다.

손씨를 가장 믿고 따른다는 동생 단원들도 앙상블과 클라리넷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앙상블 정기 연주회를 관람한 뒤 이에 매료됐다”고 밝힌 부수석 단원 최수종(19)씨는 “이제 클라리넷은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됐다”고 했다. 이어 그는 “매주 금요일마다 연습하는 과정도 힘들고 무대에 서기 전엔 너무 긴장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면서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힘이 샘솟아 공연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고 했다. 최씨의 동갑내기 친구로 앙상블에서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단원 이준희(19)씨도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소리도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됐고 앙상블 친구들과 친해지며 사회성도 좋아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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