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부산 기장군 양경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권묘연씨(앞줄 가운데)가 주민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묘연씨 제공 “일 생기면 잠 줄여서라도 이뤄내 ‘자랑스럽다’ 칭찬 한마디가 큰 힘 젊은이들이 살고 싶은 곳 만들 것”
부산 기장군에는 마을의 일뿐 아니라 군내 문화·복지·교육·환경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맹활약하는 ‘팔방미인’ 이장이 있다. 10년 넘게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양경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권묘연씨(67). 권씨는 한때 두 마을에서 이장 일을 했다.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 관련 직함은 27개. 사적 모임까지 합하면 40개가 넘는다.
경남 합천 출신인 그는 기장 토박이 남편과 결혼해 줄곧 석산리에서 살았다. 살던 집이 동부산관광단지에 편입돼 2011년 양경마을로 이주했다.
그는 사실 뜻하지 않게 이장을 맡았다. 양경마을로 이주한 그해 11월 이장을 뽑기 위한 주민총회가 열렸으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주민들은 남편에게 이장직을 권했지만, 남편도 극구 사양했다. 결국 한 주민이 총회에 참석도 하지 않은 권씨를 추천했고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이장이 됐다. 그가 평소 봉사활동에 적극적이라는 게 이장으로 추대된 이유였다.
권씨는 “주민들이 뜻을 모아 요청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며 “솔직히 싫지 않았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3월 이장 취임 후 수년간 쓰레기 문제로 고민했다. 양경마을 조성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마을엔 공터가 많았다. 밤마다 쓰레기를 싣고 와 버리고 가는 얌체족이 끊이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가구, 가전제품, 폐자재 등 쓰레기 종류도 다양했다.
“어느 누가 ‘쓰레기 마을’로 이주하겠나 싶어서 이틀에 한 번씩 주민들과 함께 청소를 했어요. 마을 조성이 끝나갈 무렵인 2018년까지 날마다 쓰레기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새로 생긴 마을이다보니 마을회관이 없었다. 마을 대소사를 모두 권씨 집에서 치렀다. 마을회관을 짓기 위해 기금 조성에 앞장서 2013년 마을회관을 준공했다. 그는 “기장읍 46개 마을 중 20개 마을은 아직도 마을회관이 없어 주민 소통에 어려움도 많고 이장 일을 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권씨의 헌신적 노력이 소문이 나면서 인근 당사마을에서 이장을 맡아달라는 요청까지 들어왔다. 이 마을 역시 이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주민이 없었다. 마을회관 분쟁으로 어수선하기까지 한 곳이었다. 새로 이장을 뽑을 때까지만 이장을 맡기로 했으나 결국 2012년부터 6년가량을 이 마을 이장 일도 함께 봐야 했다.
이후 기장읍 이장협의회장, 기장읍 주민자치위원회 부회장 등을 맡으면서 활동 영역이 읍내까지 넓어졌다. 권씨는 현재 기장군 이장협의회 부회장, 기장읍 주민자치위원장 등 중책을 맡고 있다.
그는 “일이 생기면 잠을 줄여서라도 해야 하는 성격”이라며 “힘이 들어도 ‘이장님이 자랑스럽다’는 칭찬 한마디에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권씨는 “이장도 기장군과 주민들이 격려해주고 도와줘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힘이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그에게도 걱정거리가 있다. 마을에 청년이 없다는 점이다. 권씨의 희망은 ‘청년이 많은 마을’이다. 조성 당시 21가구였던 양경마을에는 현재 82가구 160여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청년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10년 넘게 이장을 맡은 것도 젊은이가 없어서다.
권씨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마을에 생기가 돌지 않겠느냐”며 “젊은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