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째 영정 촬영 봉사하는 박희진 교수 news 20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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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첫 출근 이후 2만6천여명에게 '마지막 선물' 남겨 

영정 촬영이 한창인 부산의 한 요양원 [촬영 김재홍]
"자, 여기 보시고요. 하나둘셋, 아이고 예뻐라. 참 잘하셨어요."

지난 21일 오전 부산 사하구 자매정신요양원 1층 '한나북카페'.

알록달록한 한복 차림에 화장을 마친 할머니 10여명이 들뜬 표정으로 한곳을 바라보며 본인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들 시선이 향한 곳은 카페 한쪽에 마련된 사진 스튜디오였다. 그곳에선 요양원 동료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영정 촬영용 카메라 렌즈를 쳐다봤다.

능숙한 솜씨로 셔터를 누르는 사람은 박희진 부산보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중앙대 사진과 85학번인 박 교수는 "공군 사진병 시절에는 1시간에 전입 신병 300명도 찍어봤어요. 영정은 1시간에 100명은 찍죠"라고 웃었다.

박 교수의 영정 촬영 봉사는 올해 햇수로 28년째를 맞았다.

한때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마을 경로당에서 모기와 싸워가며 400명을 찍었다.

밭일로, 병원 진료로, 이런저런 일로 바쁜 어르신들을 기다리느라 고작 30명을 찍는 데에 온종일 걸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쌓인 관록은 동네에서 고집 세기로 소문난 사람도 무장 해제시킨다.

이날 한 할머니는 "살짝 웃어보세요"라는 박 교수의 요청에 "싫다, 안 하련다"며 버텼다.

그러자 박 교수는 손짓과 몸짓을 하며 "아주 좋아요, 아주 좋아"라고 칭찬을 거듭했고, 할머니 얼굴에 살짝 웃음이 번지는 찰나에 셔터와 조명이 시원하게 터졌다.

주변에 있던 요양원 관계자들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한다는 말인 "서울 갑시다"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며 박 교수를 거들었다.

문숙희 자매정신요양원 원장은 "영정을 찍는 날이면 할머니들이 엄청나게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박 교수님이 오시는 날은 1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자 명절 같은 날"이라고 말했다.
 

박희진 부산보건대 교수 [촬영 김재홍]
박 교수가 30년 가까이 영정 촬영에 매진하는 것은 친할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 시작됐다.

1991년 고향인 경북 군위에 살던 친할머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제대로 된 영정 없이 장례를 치렀다.

사진을 전공한 손자가 평소에 친할머니 사진 한 장 찍어드리지 못했다는 게 가슴속 한으로 남았다.

거장 사진작가를 꿈꾸던 그 손자는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여기고 찾아간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의 자원봉사를 계기로 사회복지학 교수가 되기에 이르렀다.

부산보건대(옛 동주대)에 교수로 처음 출근한 바로 다음 날인 1996년 3월 26일부터 지역의 불우한 노인을 중심으로 영정 촬영 봉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박 교수는 2만6천여명에게 영정을 '마지막 선물'로 안겼다. 매년 1천명 정도를 찍는다.

부산지역 16개 구·군 복지관 관장 중에서 박 교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

박 교수는 인화한 영정을 액자에 넣어 해당 기관에 직접 들고 간다. 택배가 편하지만, 정이 없어 보여 '직접 배송'이 원칙이다.

갑작스러운 장례로 복지관에서 급하게 연락이 오면 밤샘 작업을 하기도 한다.

5년마다 해당 기관을 다시 방문해 재촬영하는 것도 잊을 수 없다. 비교적 최근 모습을 남겨드리고 싶어서다.

2017 대한민국 자원봉사자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박 교수는 "저는 돈을 벌어서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술은 체질적으로 못 마시고, 담배는 안 피우는데 영정 촬영에 드는 비용은 술값과 담뱃값보다 적게 들어서 괜찮다"며 "장례식장에 문상하러 가서 제가 찍은 영정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촬영 차례 기다리는 할머니들 [촬영 김재홍]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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